이런 우려 때문에 코로나 이후의 경제 상황을 예측하는 시나리오에는 과거 사스 사태 이후처럼 V자형 경기회복, 상당한 오랜 기간의 침체 후 회복을 의미하는 U자형 경기회복, 아예 경기회복을 기대하기 힘든 L자형 경기, 그 끝을 알 수 없는 추락을 의미하는 I자형 경기에 이어 최근엔 W자형 경기회복 시나리오가 제기되고 있다. 즉 바이러스가 잦아진 줄 알고 경제활동을 재개했다가 다시금 바이러스가 재확산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최악의 경우로, 지난 세기 초의 스페인독감이 이에 해당된다. 무책임으로 일관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성급한 경기회복 정책에 대한 우려가 여전히 큰 이유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전망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지난 세기부터 최근까지 세계경제 및 정치질서를 주도해왔던 미국의 국제적 영향력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2014년 서아프리카에서 에볼라 바이러스가 발생했을 때만 해도 비록 미국의 경제력이 예전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당시 오바마 행정부는 신속하게 세계보건기구(WHO)와 협력하여 바이러스가 아프리카 외의 지역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을 주도하였다. 그 결과 전 세계를 긴장시켰던 에볼라 바이러스의 확산을 차단하는 국제적 지도력을 보였으며, 당시 오바마 행정부는 물론 그 누구도 에볼라 바이러스를 ‘아프리카 바이러스’로 불러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논쟁을 시작하지도 않았다.
한편 2017년 취임 초기부터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면서 기존의 국제질서를 허물기 시작했던 트럼프 행정부의 성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와 관련하여 아무런 선제적 조치를 취하지 않으며 결과적으로 미국에서 최악의 바이러스 감염 사태를 초래하면서, 유일한 정책 성과라고는 ‘중국 바이러스’라는 용어를 확산시키며 ‘중국책임론’을 부각시키는 노력뿐이었다. 미국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게 만드는 또 다른 요인은 트럼프에 대항하는 민주당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 역시 코로나 사태를 포함한 세계적 위기극복을 위한 국제적 협력방안을 제시하기보다는, 트럼프와 함께 둘 중에 누가 더 ‘독한 중국 때리기 선수(tougher China-basher)’인지 선명성 경쟁에 몰두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더해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더욱 비관하게 만드는 것은, 마치 미국의 빈자리를 메울 것 같은 제스처를 취하던 중국 역시 새로운 세계적 공공재를 제공하는 시늉을 하면서 시작했던 일대일로 정책과 아시아인프라개발은행은 물론이고 최근의 코로나 사태 관련 국제지원 과정에서도 얄팍한 정치적 계산이 너무 쉽게 드러나는 ‘자국 이기주의’를 노골적으로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 사태가 수습된 후 더욱 심각한 문제는 지구온난화가 초래할 전 세계적 재앙이며, 이는 코로나보다도 더욱 긴밀한 국제적 협력을 통해서만 대응할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럼에도 현재의 미국과 중국 지도자들에게서 이런 국제적 협력체제를 도출할 지도력을 기대하기는 난망하다. 그래서, 그나마 인류 보편의 가치에 대한 최소한의 도덕적 책무를 느끼고 있는 유럽 국가들과 코로나 사태 과정에서 새로운 국제적 리더십을 보이고 있는 한국 등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커지고 있다. 이런 혼돈의 시대에 우리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경제·교역에 있어서의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와 WHO를 중심으로 한 보건협력 등 다자주의 세계질서 부활을 위한 우리나라의 정책 노력이 커져야 할 시점이다. 반만년 역사를 통틀어 우리의 목소리가 세계적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며, 트럼프를 제외한 모두가 기다리는 목소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