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금융권에 따르면 27일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1조 원의 자금을 각각 절반씩 부담해 두산중공업에 지원하기로 했다. 지원에 대한 명목상 이유는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는 대기업에 대한 긴급 유동성 지원이다. 이는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산업통상자원부 등이 모여 열린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 회의에서 결정된 내용이다.
이에 앞서 하루 전날 두산중공업은 산은과 수은으로부터 1조 원 규모의 자금을 대출받는다고 먼저 공시했다. 보통 정부와 은행이 협의한 후에 내용을 발표한 것과 달리 자금을 조달받는 쪽에서 선수를 친 셈이다. 당시 자금 지원 결정을 전혀 확인하지 못한 국책은행 측은 적잖이 당황했다. 한 국책은행 관계자는 “위(정부)에서 결정한 내용인 것 같다. (결정 내용을) 확인해 주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다음날 두산중공업 주가는 다소 반등했고, 사전에 협의 없이 공시를 낸 것에 대해 국책은행 측은 두산중공업에 항의했다. 국책은행 한 관계자는 “두산중공업은 건전했던 회사가 갑자기 어려워진 사례가 아니다. 자금조달 상황이 어려워져서 자금경색 문제에 빠진 건 맞지만, 협의하는 상황이었다”며 “코로나 사태로 위기를 겪은 건 아니었다”고 말했다.
해당 사안은 다음 날 산은이 공식 보도자료를 내면서 확정됐다. 여기에 산은은 “금일 개최된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 회의에 두산중공업 앞 유동성 지원 방안이 보고됐다”라고 썼다. 사실상 정부가 사전에 합의한 내용을 국책은행이 보고 받은 셈이다. 이번 지원에서 시중은행이 빠진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급하게 민간은행으로부터 지원을 이끌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신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길을 열어뒀다.
다만 특혜성 지원 논란을 의식한 듯 산은은 ‘코로나19’ 사태로 경색된 금융시장에서 두산 측이 유동성을 공급받기가 쉽지 않았다는 점과 기간산업인 발전업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 “정책적 자금지원이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은행과 사전 조율 없이 자금을 지원한 것은 이번 지원이 구조조정 원칙에 벗어나는 예외 사항이기 때문이다. 두산중공업은 산은이 수년 전부터 관리했던 대기업으로, 발전설비사업 실적 악화와 자회사인 두산건설의 손실이 지속하면서 재무구조가 좋지 않았다. 이런 기업에 섣불리 자금을 지원하게 되면 배임 등의 문제가 불거질 수 있었다. 최대현 산은 기업금융부문 부행장도 기자간담회에서 “(두산중공업은) 우선 실사를 거쳐 워크아웃과 법정관리 등 정상화 확보가 타당했다”라면서 예외적 지원임을 인정했다.
채권단 한 관계자는 “두산중공업에 대한 지원은 산은이나 수은 등 개별 금융기관이 협의가 어려운 사안이었고, 1조 원의 대규모 지원이었기 때문에 정부가 직접 나서서 결정한 것”이라면서도 “자금조달 주체는 어쨌든 은행”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한 관계자는 “아무리 국책은행이라도 내부에서 협의 없이 결정하는 경우는 드물다”라면서 “과거 서별관 회의에서 결정한 방식과 유사하다”라고 말했다. 서별관 회의는 기재부 장관, 한국은행 총재, 금융위원장 등이 비공개로 모여 거시경제 정책을 협의했던 회의를 말한다. 법적 근거 없이 주요 정책을 논의한다는 비판이 있었고 이번 정부가 공식적으로 없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