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아의 라온누리] 커피와 추억, 그리고 이탈리아

입력 2020-03-25 17:41 수정 2020-03-26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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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교열팀장

커피 마시는 이유가 궁금하다. 나는 향이 좋아서 매일 아침 커피를 마신다. 갓 지은 밥 냄새, 닭튀김 냄새(특히 맥주가 당길 때), 상큼한 레몬향, 숲속 솔향기… 기분 좋은 냄새는 손에 꼽고도 남는다. 그런데 고소한 향의 커피는 잠까지 깨워주니 출근길 늘 마시게 된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지난해 가을 직장인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나와 같은 이유로 커피를 마시는 이가 여럿이다. ‘잠을 깨기 위해서’ 커피를 마신다는 응답자가 가장 많았다. ‘습관’, ‘동료와의 소통을 위해서’라는 대답이 뒤를 이었다. 하루에 평균 두 잔을 마시고, 커피값으로 한 달에 12만 원 정도를 쓴다니 한국인의 커피 사랑이 참 대단하다.

‘둘 둘 둘’이란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타 먹는 커피가 대세이던 시절 커피·설탕·크림의 비율이다. 믿기 힘들겠지만 1990년대 초까지도 기업의 여자 직원들은 상사나 회사 방문객의 커피를 탔다. 심지어 ‘자기계발 교육 프로그램’이란 이름하에 ‘커피 잘 타는 법’을 가르치는 회사도 있었다. 그러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를 거치며 타 먹는 커피 대신 커피믹스가 큰 인기를 끌었는데, 구조조정으로 여직원들이 해고된 영향이 컸다. “커피믹스는 수많은 ‘미스 김’”이라는 말은 당시 만연했던 직장 내 성차별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흐른 지금, 카페 한 곳을 지나 1분 정도 걸으면 또 다른 카페가 나올 만큼 원두커피를 선호하는 사람이 크게 늘어났다. 그래도 나른하고 피곤한 오후엔 봉지 커피를 뜯는 이들이 많은 걸 보면 커피믹스의 인기는 지금도 여전하지 싶다. 그 인기만큼이나 외모도 여러 번 바뀌었다. 직사각형에서 스틱형으로 변하더니 지금은 설탕 양 조절은 물론 뜯기도 훨씬 쉬워졌다. 이 순간 스틱형 봉지 커피를 재치 넘치게 표현한 이환천의 시 ‘커피믹스’가 떠오른다. “내목따고 속꺼내서/끓는물에 넣오라고/김부장이 시키드나” 짧지만 묘한 쾌감을 주는 시다. 네 글자의 운율에 강한 중독성마저 느껴져 무릎을 탁 치며 단번에 외웠다.

커피는 팍팍할 땐 위로가 되기도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 캠페인이 벌어지는 요즘, 카페가 아닌 집에서 커피를 곱게 갈아 내려서 마시며 든 생각이다. 가족들과도 다소 떨어져 앉아 마시니 커피는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소통의 매개체가 된다. 커피잔을 비우며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했던 말을 해 본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맛있는 커피!”

커피를 주문할 때 머뭇거린 적이 여러 번이다. 맛과 향이 다양해지면서 메뉴판이 서너 장이나 되는 곳이 많아서다. 커피의 기본은 이탈리아 등 남유럽 사람들이 좋아하는 에소프레소. ‘빠르다(express)’와 ‘압축하다(press)’라는 말에서 온 에스프레소는 공기를 압축해 짧은 시간에 뽑아낸 커피이다. 여기에 무엇을 얼마나 섞느냐에 따라 커피 이름은 달라진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한다(2019년 스타벅스 빅데이터 분석 결과)는 아메리카노는 에스프레소에 물을 탄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때 미군이 배급받은 커피를 최대한 많이 마시기 위해 물을 탄 데서 비롯됐다. 에스프레소에 뜨거운 우유를 섞으면 이탈리아의 카페라테, 프랑스의 카페오레가 된다. 카푸치노는 거품 낸 우유를 라테의 절반만 넣고 계핏가루나 초콜릿 가루를 뿌린 것으로, 이탈리아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카푸친파 소속 사제의 복장 색깔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에스프레소에 우유 거품만 얹으면 마키아토이다. 우유를 점 찍을(marking) 정도로 적게 넣는다는 뜻이다.

새삼 20여 년 전 찾았던 이탈리아가 떠오른다. 비 내리던 봄날, 로마 판테온 부근의 한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이 글을 쓰는 내내 그날의 진한 커피향이 코끝을 맴돌고 있다. 커피의 천국 이탈리아가 코로나19로 국가적 위기를 겪고 있어 안타깝다. 가수 이한철이 동료들과 함께 부른 희망의 노래 ‘슈퍼스타’가 우리나라를 넘어 유럽 등 세계 곳곳으로 울려퍼져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 이 봄이 가기 전 노랫말처럼 되리라 믿는다. “괜찮아, 잘될 거야!” jsjy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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