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 '레베카' 이창민 "악역? 제 사랑은 진짜예요"

입력 2020-03-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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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맞는 옷이라면, 아이돌의 뮤지컬 진출에 편견 없을 것"

▲뮤지컬 '레베카'에서 잭 파벨 역을 맡은 이창민. (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
▲뮤지컬 '레베카'에서 잭 파벨 역을 맡은 이창민. (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
수많은 영화·드라마·뮤지컬들은 특정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그리고 그 옆에 악역들을 등장시킨다. 주인공들의 숭고한 사랑은 악역의 방해로 흔들리고 좌초되기 일쑤다. 이 흐름은 공식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뮤지컬 '레베카'에선 레베카의 사촌인 '잭 파벨'이 악역이다. 레베카의 죽음에 관한 미스터리를 알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주인공 '막심'을 협박한다. 넘버 '건지는 놈이 임자'를 부르며 레베카의 돈에 집착을 보이기도 해 탐욕스러운 인물로 그려진다.

이 설정에 뮤지컬배우 이창민이 반기를 들었다. 최근 서울 양천구 인근 카페에서 만난 이창민은 "제 사랑은 진짜 사랑이고, 레베카를 죽인 건 막심"이라며 '잭=악역'임을 거부했다.

"잭은 자신과 레베카는 사랑했던 사이고, 세상이 갈라놓았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잭이 하는 모든 행동이 당위성이 생기거든요. '돈'을 제외하면, 잭 입장에선 막심이 나쁜놈이죠. 막심은 돈이 많아서 잭 파벨이 사랑했던 여자를 빼앗아간 거예요. 그래서 레베카는 결혼해서도 잭을 만난 거고요."

그의 대답은 일반 관객들의 생각을 뒤집었다. 그는 '잭과 레베카는 하늘이 갈라놓은 사이'라는 설정을 세워놓고 이에 부합하는 연기를 하는 데 고심하고 있었다.

"잭은 자기가 맞고, 자기가 정의라고 믿고, 자신이 아량을 베푼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돼요. 스스로 잭으로서 사랑의 당위성을 찾으려 하니 사랑이라고 믿지 않으면 이해되지 않았던 것들이 모두 해결되더라고요."

'레베카'는 벌써 다섯 번째 시즌을 진행하고 있는 대작이다. 2006년 오스트리아에서 초연해 2013년 EMK뮤지컬컴퍼니가 음악과 대본을 그대로 살려 국내 초연했다. 촘촘한 줄거리에 훌륭한 무대까지 어우러져 원작자인 미하일 쿤체(대본)·실베스터 르베이(작곡)는 "한국 무대가 세계 최고"라는 극찬까지 내놨다. 국내 공연에서 67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작품에 합류하는 이창민은 자신만의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제가 만든 캐릭터가 어떻게 보일지 고민 많이 했습니다. 벌써 많은 분이 보셨고, 최민철 형이 5연 중 4연째 잭 역할을 하고 계시잖아요. 완전 새로운 역할이 아니다 보니 제가 표현하는 잭을 공연을 사랑하는 분들이 어떻게 보실지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죠. 대신 튀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요. 극에서 벗어난 새로운 잭을 만들고 싶은 마음은 없었습니다. 다만 '그래, 잭은 그럴 수밖에 없어'라고 생각해주신다면 성공이었어요."

고민했던 지점들이 어느 정도 해소된 것 같은지 묻자 "'때리고 싶다', '꼴 보기 싫다'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며 "욕이 곧 칭찬이기 때문에 '잘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잭은 '레베카'에서 맨덜리 저택에서 레베카를 기다리는 집사 댄버스 부인과 맨덜리의 주인 막심과 만난다. 이창민은 댄버스 부인 역을 맡은 옥주현·신영숙·알리와 호흡하는 것에 대해 소감을 밝혔다.

"주현 누나와 영숙 누나는 댄버스로서의 분석과 해석이 이미 몸에 체화됐어요. 원래 댄버스가 그랬을 거 같아요. 주현 누나는 좀 무서워요. 잭이 서재에 버티려고 해도 씨알도 안 먹히는 느낌이죠. 센 건 영숙 누나도 마찬가진데 느낌이 좀 달라요. 알리 누나는 불타는 맨덜리에서 포효하는데, 에너지가 어마어마합니다. 요즘 육아를 하면서 모성애까지 보여요. 은아 누나는 가사가 바뀔 때마다 표정까지 바뀌어요. 디테일이 대단해서 그 리액션만 받아도 저는 한 곡이 끝납니다."

네 명의 막심과 합을 맞추며 느낀점도 쏟아냈다. "정한이 형은 비주얼적으로나 느낌이 그냥 막심이에요. 기준이 형은 관객이 막심한테 보고 싶어 하는 게 뭔지 아는 거 같아요. 연기 장인이시잖아요. 카이 형은 대기실에서는 순한데 무대에선 완전히 바뀌더라고요. 이히(I)가 반할 수밖에 없는, 깔끔하고 정갈한 막심이죠. 성록이 형은 키도 크고 무대 장악력이 대단해요. 같이 있으면 쭈꾸미가 된 거 같아요."

▲넘버 '건지는 놈이 임자'를 부르고 있는 이창민과 앙상블의 모습. (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
▲넘버 '건지는 놈이 임자'를 부르고 있는 이창민과 앙상블의 모습. (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

상대 배우에 대한 생각을 상세하게 쏟아내는 모습에서 이창민이 '레베카'를 연구하는 데 수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개막 첫 주에만 공연을 수차례 모니터하면서 각각의 배우들이 가진 디테일을 찾아냈다. 그는 '레베카'에 출연하면서 자신감도 가졌다. 잘하는 노래에 연기를 쌓아가는 것, 자신이 만든 캐릭터의 방향성이 관객들과 부합하는 것은 이창민에게 원동력이 됐다. 데뷔 이후 슬럼프를 겪으면서 자신만이 갖는 특별한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는 압박감도 한몫했다.

"연예인이나 예술인들이 겪는 딜레마가 '그래서 뭐?'예요. '창민이 노래 잘하지, 그리고?'라는 물음표에 대한 답을 내놔야 하는 거죠. 가장 무서운 평가입니다. 정답은 없어요. 물음표를 떼기 위해 남들보다 두세 배 더 노력해야 할 수도 있고, 당장의 이미지 변화가 필요할 수도 있는 거니까요. 여러 시도를 통해 해결책을 찾는 게 방법일 수도 있어요. 저는 그중 하나가 뮤지컬이었어요. 뮤지컬은 제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여러 캐릭터가 존재합니다. 제게 맞는 캐릭터를 찾아갈 때 접근 방식이 열려있는 것 같아요."

그룹 2AM 출신인 그는 '딱 맞는 옷'이라는 생각에 '라카지'로 뮤지컬에 발을 들였다. 연기도 배우지 않았던 상태에서 무리한 도전은 하고 싶지 않았다. 이창민은 뮤지컬로 진출하는 후배 아이들에게도 같은 조언을 내놨다.

"자신에게 맞는 옷이 있다면 하는 게 맞아요. 하지만 무리하게 안 맞는 옷을 맞춰서 입을 필욘 없죠. 아이돌도 각자 다양한 색깔을 갖고 있잖아요. 주인공이 아닌 작은 역할이라도 잘 맞는다면 아이돌이라는 편견이 필요 없죠. 하지만 아이돌이기 때문에 역할을 준다는 건 문제입니다. 막심을 20대 초반 아이돌이 할 순 없으니까요."

이창민은 지금도 남들보다 몇 배 더 노력해서 무너지지 않겠다는 각오로 활동하고 있다. 자신을 좀 더 담금질하고, 좀 더 열심히 하면 보상이 돌아올 것이란 믿음에서다. '잭과 레베카는 진짜 사랑'이라고 주장했던 이창민의 고민들이 비로소 이해됐다.

"극으로 봤을 땐 제가 나쁜 놈이 되는 게 맞지만, 저로선 잭이 불쌍해요. 그래도 끝나는 날까지 분석을 더 하려고요. 몇 번씩 보시는 분들께 똑같은 연기를 보여드리고 싶진 않아요. 연기에 대한 제 욕심도 조금씩 채워나갈 수 있었음 좋겠습니다. '레베카'에 숟가락 좀 얹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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