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9일(현지시간)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 2020'에서 각본상ㆍ국제장편영화상ㆍ감독상ㆍ작품상을 수상하며 한국 영화사를 다시 썼다.
기생충의 4관왕 뒤에는 투자ㆍ배급사를 맡은 CJ그룹과 제작 투자자로 이름을 올린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CJ그룹과 이 부회장이 기생충 신화의 '숨은 주역'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날 시상식에서 기생충의 책임프로듀서(CP) 자격으로 무대에 오른 이 부회장은 "봉준호 감독의 모든 것을 좋아한다"며 "그의 머리, 그가 말하고 걷는 방식, 특히 그가 연출하는 방식과 유머 감각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영화를 보러 가주시는 관객들에게 감사하다"며 "주저하지 않고 저희에게 의견을 얘기해주셨으면 좋겠고, 그런 의견 덕에 안주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간 건강 상의 문제 등으로 대외 활동에 소극적이었던 이 부회장은 '기생충'에 대한 지원만큼은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는 지난해 5월에는 칸 국제영화제에 직접 방문해 전 세계 영화 관계자들에게 '기생충'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이 같은 이 부회장의 현장 행보는 기생충 4관왕의 밑거름이 됐다. 작품 출품 및 초청 형식으로 이뤄지는 여타 영화제와 다르게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회원 8000여 명의 투표를 통해 후보작을 선정하는 아카데미의 경우 영화계 '인적 네트워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CJ그룹' 차원에서의 지원도 전폭적으로 이뤄졌다. CJ그룹은 봉 감독과 2003년 영화 '살인의 추억'를 함께한 이후 2009년 '마더', 2013년 '설국열차'에 이어 지난해 '기생충'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CJ그룹은 봉 감독이 '설국열차' 촬영 당시 해외 투자 유치에 난항을 겪자 제작비 전액을 투자하기로 결정하며 그의 작품 활동을 전폭적으로 지원한 바 있다. '캡틴 아메리카' 크리스 에반스와 에드 해리스 등 헐리웃 톱스타들이 총출동한 이 작품은 봉 감독의 글로벌 인지도 제고에 발판이 됐다는 평가다.
이 부회장이 시상식에서 자신의 남동생인 이재현 CJ 회장에게 "불가능한 꿈일지라도 언제나 우리가 꿈을 꿀 수 있도록 해줘서 고맙다"고 고마움을 전한 이유이기도 하다.
CJ그룹 관계자는 "국내 대기업이 영화 시장에서 철수한 것과 달리 CJ그룹은 1990년대부터 영화 산업에 대한 지원을 꾸준히 이어왔다"며 "이 부회장의 경우 아카데미 회원 자격이 있어 네트워크 측면에서 강점이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