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중앙정부는 춘제(설날) 연휴 이후 첫 거래일인 3일(현지시간) 신종 코로나로 인한 금융시장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시중에 1조2000억 위안(약 205조 원) 유동성을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사전에 자금 공급 계획을 발표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시장 혼란을 최대한 방지하려는 고육지책이었다. 그러나 상하이증권거래소와 선전증권거래소에서는 개장과 동시에 3000개가 넘는 종목이 가격 제한폭인 10%까지 떨어져 거래가 정지됐다. 이 같은 수준의 큰 낙폭은 2015년 이후 4년여 만에 처음이다.
앞서 인민은행을 포함한 정부 부처 5곳은 지난 1일 공동 성명에서 “제약업체 등 신종 코로나와 싸우고 있는 기업들을 돕기 위한 통화정책과 신용 정책을 강화할 것”이라며 “바이러스와의 전쟁에 필요한 수입품에 대해서도 관세를 인하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인민은행의 유동성 공급은 이런 약속을 지키기 위한 일환이다.
정부 지원책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의료용품 생산·운송·판매 기업들은 저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의료용품 수입 등에서 해외송금 규제를 완화한다. 신종 코로나에 따른 타격이 큰 기업들의 대출과 신종 코로나 감염자 개인의 주택담보대출 상환기일은 연장된다. 기업 채권 발행절차가 간소화되며 상장사 재무제표 공시 기한도 연장한다.
신종 코로나 조기 수습을 기대할 수 없는 가운데 기업들이 자금 융통을 제대로 하지 못해 파산이 급증, 경제 전반이 침체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진원지인 후베이성 기업은 물론 전국 소매, 음식, 호텔 등 전국 다양한 업종이 지원 대상에 포함됐다.
한편 중국 당국이 신종 코로나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바이러스 진원지인 우한에서 열흘이라는 초단기간에 세운 ‘훠선산(火神山)병원’은 이날부터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갔다. 이 병원은 1000개 병상 규모로, 군 야전병원 형식으로 설계돼 인민해방군 병참보장부대가 운영을 맡는다. 이 병원에 배치된 의무 병력 대부분은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 당시 최일선에 있었던 베이징 소재 샤오탕산병원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앤드루 틸튼 골드만삭스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정부는 즉각적인 바이러스 통제가 긴급한 지역을 중심으로 금융자원 흐름을 보장하는데 초점을 맞출 것”이라며 “전염병이 통제되고 나면 경제회복을 위해 인프라 투자와 소비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민은행의 이날 유동성 공급은 해당 통계가 시작된 2004년 이후 일일 기준으로 가장 큰 것이라고 블룸버그는 분석했다. 그러면서도 현지에서 1조 위안 이상의 단기부채가 이날 상환 기일을 맞이해 실제 유동성 공급 효과는 1500억 위안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싱가포르화교은행(OCBC)의 토미 셰 이코노미스트는 “공급 규모가 크지는 않다”며 “인민은행은 일부 유연성을 유지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투자심리가 더욱 나빠지면 이번 주에 또 다른 유동성 공급에 나설 수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인민은행의 대규모 유동성 공급이 이날 중국 증시와 위안화 가치 하락을 막기에는 여전히 불충분할 수 있지만 세계적인 시장 혼란은 완화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악시코프의 스티븐 이네스 수석 시장 투자전략가는 “인민은행 조처는 임시방편 수준을 훨씬 웃도는 규모”라며 “아울러 인민은행은 외환시장에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시장의 우려를 완화하기에 충분한 조치를 거듭 강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이날 중국 경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호주달러화 가치가 장 초반 미국 달러화 대비 0.1% 오르는 등 글로벌 시장은 중국 금융당국 대응에 일부 안심하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다만 아직 시장이 안심할 단계는 전혀 아니다. 블룸버그는 이번 신종 코로나 사태로 중국의 1분기 경제성장률이 4.5%로 낮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 후베이성 인근인 후난성에서 조류인플루엔자(H5N1)까지 새롭게 나타났다. 이에 중국 농업당국은 지난 주말 조류인플루엔자가 처음으로 나타난 후난성 샤오양시에서 약 1만8000마리 닭을 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