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는 늘고 공급량은 한정돼 있으니 가격도 덩달아 올랐다.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 1, 2위 업체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사상 최대 실적을 매분기 새로 썼다. 영업이익률은 50%에 육박했다.
지난해 반도체 시장은 불황기였다. 2년간 초호황에 따라 상대적으로 낮아 보인 것도 있었지만, 확실히 공급 과잉과 수요 부족의 문제를 겪었다.
수요가 증가하자 반도체 업체들이 앞다퉈 설비를 늘렸는데, 미국과 중국 사이에 무역 갈등이 불거지는 등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IT업계가 반도체 주문을 미뤘다. 재고가 쌓이자 가격이 곤두박질쳤다.
특히 고가ㆍ대용량 제품을 많이 쓰는 클라우드 업계 수요가 눈에 띄게 줄었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이미혜 선임연구원은 “아마존 등 클라우드 서비스 기업은 비용보다 전략적 판단과 수요 등에 기반해 투자를 결정하는데, 대규모 데이터센터 투자는 미국과 중국 중심인데다 경제불확실성 등으로 투자가 영향받았다”고 말했다.
먼저 메모리 반도체 제조사들이 급락한 가격에 대응하기 위해 생산물량 조절에 나서면서 재고가 줄고, 메모리 반도체 가격 내림세도 주춤하는 모습을 보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지난해 3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재고가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D램 DDR4 8Gb(기가비트) 고정거래가격은 2019년 10월 2.81달러를 기록한 후 12월 말까지 3개월간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올해 중반 메모리 반도체 업계들이 쌓아놓은 재고 수량이 정상화되면서 가격도 반등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올해는 스마트폰·서버 등 반도체 소비가 많은 주요 시장에서 수요 증가도 예상된다. 우선 서버 업체들이 주문량을 늘리기 시작했다. 미ㆍ중 무역전쟁으로 인한 IT 산업 불황을 우려했던 마이크로소프트ㆍ아마존 등 기업들이 클라우드 투자를 늘리면서 이들에게 납품하는 서버 업체들이 속속 D램·낸드플래시 구매에 나서고 있다.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차 등이 본격화되면서 전자기기와 자동차에 탑재되는 반도체도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4차 산업혁명으로 유발되는 다양한 수요가 얼마나 클지 아직 제대로 알 수 없다”며 “2017~2018년 같은 초호황기는 오지 않더라도, 다시 상승세를 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도체가 호황기에 들어서면 기술력에서 앞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7월부터 세계 최초로 12Gb LPDDR5 모바일 D램 양산에 들어갔고, 16Gb LPDDR5 D램도 선행 개발한다. 낸드 역시 올해부터 평택 V낸드 전용 라인에서 성능을 더욱 높인 6세대 V낸드 기반 SSD 라인업을 본격적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SK하이닉스는 올해 128단 4D낸드 기반의 테라바이트급 고성능 낸드 솔루션과 3세대 10나노급 D램의 양산을 본격 시작한다.
물론 불안 요인도 있다. 미국과 중국의 2차 무역협상이 시작되면 다시 양국의 대립 국면이 벌어져 경제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 또 글로벌 경기가 부진한 상황으로 돌아설 가능성도 경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