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저금리의 역풍 경고에도 중앙은행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과거 전철을 밟을까 두려워서다. 1987년 2월 ‘루브르 합의’ 이후 적극적인 내수 부양에 나선 일본은 심각한 버블 경제에 직면한다. 물가까지 오르자 장고 끝에 금리 인상 칼을 빼 들었는데 이게 악수가 됐다. 자산 가치 폭락과 함께 디플레이션 수렁에 빠져 30년이 넘도록 ‘저성장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2018년만 해도 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갔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그해 말 주식시장이 요동치자 긴축 계획을 철회하고, 2019년에 세 번 연속 금리 인하에 나선 배경이기도 하다. 양적 완화를 통해 아무리 시장에 돈을 쏟아부어도 ‘저물가의 골’에 갇혀 있는 경제도 중앙은행들의 소심함에 명분을 제공해 줬다.
그 사이 엄청난 빚이 자랐다. 전 세계 총부채 규모가 250조 달러를 넘어서며 지구촌은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빚더미에 올라탔다. 특히 신흥국 부채가 급증했다. 신흥국의 부채는 71조 달러를 넘어섰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220%로 위험 수위를 넘나든다.
문제는 이 상황이 영원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변화무쌍한 세계 경제에서 미국이 다시 슬금슬금 금리를 올리기 시작하면 불행의 파고가 덮쳐온다. 빚이 늘어나는 데다 달러 유출에 따른 통화가치 하락으로 인한 수입 물가 급등, 내수 위축 등 악순환에 빠져들게 돼 있다. 그리고 가장 취약한 신흥국부터 무너질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야 화폐 찍어내고 환율전쟁을 벌여 어떻게든 살아남겠지만, 이렇다 할 수단이 없는 신흥국들은 죽어 나는 수밖에 없다.
저금리의 독배를 마신 세계 경제에 시한폭탄이 돌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