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에게 손 벌리는 적자기업

입력 2020-01-08 15:36 수정 2020-01-08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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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기업들이 위기 탈출을 위해 주주배정 유상증자 카드를 꺼내고 있다. 이들 기업은 대부분 증자를 통해 조달한 금액을 차입금 상환에 쓴다는 입장이다. 통상 시장에서 주주배정 증자는 기관 자금 유치에 실패해 주주의 손을 빌리는 것으로 인식되는 만큼, 공시 이후 급격한 주가 하락이 이어졌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부터 현재까지 이노인스트루먼트, 모트렉스, 지스마트글로벌 등의 기업이 주주배정 방식 유상증자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노인스트루먼트와 모트렉스는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이며, 지스마트글로벌은 주주우선 공모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들 기업은 모두 실적 부진으로 적자를 기록하면서 외부자금을 통한 재무 개선이 절실한 상태다. 지스마트글로벌은 주력 사업인 스마트글라스(투명전광유리) 시장이 침체하면서 실적이 급격하게 하락했다. 2017년 1000억 원에 가까웠던 매출액은 2018년 3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고, 지난해 3분기엔 누적 매출액 79억 원에 그쳤다. 영업이익도 2017년 214억 원으로 승승장구하다 2018년 91억 원 적자로 돌아섰고, 지난해 3분기까지도 95억 원가량의 영업손실이 난 상태다.

지난해 연말 370억 원, 110억 원 규모의 유증을 결정한 통신장비업체 이노인스트루먼트와 자동차용 AVN(오디오ㆍ비디오ㆍ내비게이션) 전문업체 모트렉스도 지난해 3분기 기준 모두 적자를 기록했다. 이노인스트루먼트는 2016년 이후 지난해까지 지속해서 실적이 감소하고 있다. 2018년 첫 영업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지난해 3분기에는 78억 원으로 적자 규모가 더 커졌다. 모트렉스도 2017년 중장비 제조업체인 전진중공업을 인수하면서 500억 원에 달하는 재무 부담을 진 데 이어, 올해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 모두 적자로 전환했다.

투자자 사이에선 증자 이후 수급과 성장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증자 규모가 현재 유통주식 수와 맞먹거나 큰 규모인 데다, 증자 목적이 새로운 사업 발굴 등 기업 성장과 관련된 것이 아닌 차입금 상환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지스마트글로벌의 경우 296억 원 규모의 유증 결정과 함께 10대 1 비율 감자 소식을 별도로 공시했다. 2월 중순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감자 안이 승인된다는 전제하에 4월 무상감자, 5월 청약을 받는다는 일정이다. 증자를 통해 발행되는 주식은 1300만 주로, 감자 이후 총 주식 수(1133만9394주)보다 큰 규모다. 기존 주주가치가 희석된다는 점에서 투자자 사이에선 악재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증자대금 전부를 차입금 상환에 쓴다고 밝혀 기업 성장 기대감은 줄고 유통주식 수 증가에 대한 우려가 커진 상태다.

이러한 우려로 인해 유증 결정을 공시한 이후 해당 기업들의 주가는 요동쳤다. 이노인스트루먼트는 공시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 23일 28% 넘게 주가가 하락하며 2200원대로 가라앉았다. 지스마트글로벌은 감자 및 유증 소식을 밝힌 다음 날 장 초반부터 하한가 가까운 내림세를 보였고, 모트렉스도 16%가량 내려 현재까지도 급감한 주가 근처를 횡보 중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이 유상증자를 할 때 자금 사용 목적에 따라 이후 주가 추이가 달라진다”라며 “시설, 설비투자 등 사업 확장을 위한 경우에는 증자 이후 주가가 상승하는 경우가 많지만, 차입금 상환 등 재무개선을 위해 자금을 조달하는 경우 기업이 어렵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져 주가 하락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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