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형의 통계로 경제읽기] 제조업에 대한 새로운 인식

입력 2019-12-0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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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박사, 한국개발연구원 전문위원

지난 6월 정부가 발표한 ‘제조업 르네상스 비전 및 전략’이라는 장기전략 계획을 보고 늦게나마 정부가 제조업을 재평가하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의 경제구조를 보면 국내총생산(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30% 가까이 되는데, 이는 선진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매우 예외적인 현상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제조업의 비중은 10%를 조금 웃도는 수준이며, 제조업 강국이라는 국가라 해봤자 20% 수준에 머물러 있다.

구체적인 숫자를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아일랜드가 제조업 비중이 31.9%로 가장 높고, 우리나라가 29.5%(2017년 기준)로 그 뒤를 이었다. 독일, 일본 등 전통적 제조업 강국들은 20%를 조금 상회하는 수준이며, 이외에는 동구권 국가들이 비교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구 선진국들을 보면 미국 11.2%, 영국 9.0%, 프랑스 10.0%, 스페인 12.8% 등으로 대부분 10% 언저리에 있다.

우리 경제는 고도성장기를 지나 2000년 이후엔 과거에 비해 성장률이 크게 둔화되었다. 2000년대에는 연도별로 다소 굴곡은 있었지만 대체로 연평균 5% 정도의 성장률을 기록하였으며, 2010년대에 들어서는 2~3%대로 낮아졌다. 이러한 성장 둔화 현상과 함께 다른 선진국에 비해 특이하게 높은 제조업 비중을 두고, 앞으로 우리 경제가 선진화하기 위해서는 제조업보다는 서비스업의 발전이 중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언론이나 학계에서도 제조업 비중이 높은 것을 문제시하고 서비스업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필자는 이러한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산업 가운데 제조업만큼 생산성이 높은 분야는 드물다. 그리고 제조업은 그 생산물의 국제적 이동이 자유롭기 때문에 경쟁력만 있다면 세계시장이라는 무한대의 수요를 대상으로 시장을 확대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서비스업은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많은 부분이 저생산성 업종으로서 생산성 향상이 쉽지 않다. 또 국가 간 이동이 쉽지 않아 수요도 국내시장으로 제한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서비스업이 국가 경제를 이끄는 주력산업으로서 기능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서비스 산업에서 우리 경제를 이끌어 갈 무슨 특별한 부분이 있는 걸로 생각한다. 그렇지만 실제로 서비스 산업의 구성을 한번 보자. 서비스 산업은 도·소매·음식·숙박, 운수업, 금융보험업, 부동산업, 정보통신업, 사업서비스업, 공공행정, 교육서비스업, 의료 및 보건서비스업, 예술·스포츠·오락 등의 산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독자들이 보기에 과연 이들 산업 가운데 우리 경제를 이끌어 갈 동력이 될 산업이 얼마나 눈에 띄는지 묻고 싶다. 물론 정보통신업이나 사업서비스업 등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그럼 선진국들은 모두 서비스업 비중이 높은데 왜 그런가? 선진국들이 제조업 비중이 줄어들고 서비스업의 비중이 커진 것은 그들이 원해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과거 세계 제조업을 석권했던 선진국들이 신흥 개발국들과의 경쟁에서 밀려 제조업이 위축되면서 어쩔 수 없이 서비스업 비중이 커진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서구 선진국들은 1960~80년대에 걸쳐 일본이라는 제조업 강국의 등장으로 제조업에서의 경쟁력을 잃기 시작했으며, 우리나라를 비롯한 NICs라는 신흥 공업국들, 그리고 최근에는 중국 및 동남아 국가 등 새로운 제조업 강국들이 차례로 등장하면서 제조업의 주도권이 이동하게 된 데 따른 결과로 본다.

필자는 우리나라가 아직도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제조업의 비중이 높다는 것은 매우 행운이라 생각한다. 비록 성장이 둔화되었다고 하지만 꾸준히 성장세를 지속해온 것은 제조업 덕분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우리도 다른 선진국들이 그랬던 것처럼 제조업에서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은 점점 어려워질 것이고, 이에 따라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서비스업의 비중은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앞으로 경제 목표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그리고 변화된 경제환경에 어떻게 적응해야 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적지 않은 진통을 겪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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