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22일 내년 예산안 국회 시정연설에서 “경제가 엄중한 상황으로 재정의 과감한 역할이 요구된다”며 “확장예산은 선택 아닌 필수”라고 강조했다. 513조5000억 원의 ‘초슈퍼 예산’이 불가피하다며, “지금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 미래에 더 큰 비용을 치를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예산안대로 해도 내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40%를 넘지 않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10%에 비해 우리 재정건전성은 최상위 수준임을 설명했다.
경제활력을 살리기 위한 마중물로서 재정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상황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재정지출이 너무 빨리 늘어 나랏빚이 급증하고 건전성이 크게 나빠진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으로 재정지출 증가율이 경제성장 속도를 훨씬 앞서고, 건전성 회복 가능성도 낮다는 경고다. 특히 이런 재정지출 증가는 과거 경제위기 때나 나타났던 ‘이상징후’로 지적된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을 지낸 박형수 서울시립대 교수가 21일 열린 건전재정포럼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박 교수는 “작년부터 내년 예산안까지, 재정지출 증가율이 경상성장률(실질성장률+물가상승률)의 2배를 초과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총지출증가율(7.1%)이 경상성장률(3.1%)의 2.2배였고, 올해 지출증가율(10.8%)은 성장률(3.0%)의 3.6배, 내년에도 지출증가율(8.0%)이 성장전망치(3.8%)의 2.1배로 예상됐다. 이런 경우는 1998년 외환위기, 2003년 신용카드 사태,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등 3차례에 불과했다. 2015∼2017년 재정지출증가율은 4%로 경상성장률(5.5%)보다 낮았다.
결국 재정적자가 급증하고 국가채무비율도 높아진다. 박 교수는 적자규모가 내년 GDP 대비 3.6%이고 2023년까지 3%를 웃돌면서, 국가채무비율이 2023년 GDP의 46.4%로 재정이 위험한 상태로 간다고 경고했다. 국회 예산정책처도 국가채무가 올해 734조8000억 원에서 내년 811조1000억 원으로 늘고, 2023년 1074조3000억 원, 2028년 1490조6000억 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최근 전망했다. 국가채무비율은 올해 38.0%, 내년 40.5%, 2028년 56.7%로 높아진다는 것이다. 정부가 복지 등에 막대한 예산을 쏟고 최저임금 과속 인상 등 정책 실패를 재정으로 보전하면서도 세입 확대나 사회보험료 인상 등은 미루고 있는 탓이 크다.
재정건전성을 기축통화를 보유했거나 사회적 자본이 탄탄한 선진국들과 단순 비교해 재정여력이 충분하다고 자신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복지지출이 이어지면서 늘어나는 빚은 미래세대로부터 더 많은 세금을 걷어 메워야 한다. 기업과 개인 등 민간의 경제 주체들이 쓸 돈이 줄고 경제활력은 떨어진다. 재정 악화를 보다 심각하게 봐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