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노무현 정부는 DTI(총부채상환비율) 신설, 종부세 도입, 재건축 전매 금지 ,양도소득세 강화 등 수요 억제책을 쏟아냈다. 물론 전 정부가 띄어놓은 부동산 시장을 수습해야 했다는 점에서는 억울한 측면도 없지 않다.
앞서 김대중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에서 추락한 경기를 되살리기 위해 부동산 규제를 파격적으로 풀어헤치면서 서울 아파트값은 2002년 31% 폭등했고, 노무현 정부 초기에도 10% 넘게 가격이 뛰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집값 안정 정책을 공급보다 ‘수요 억제’에서 찾으려 했다. 이는 노무현 정부 부동산 정책의 최대 패착으로 꼽힌다. 12곳의 2기 신도시 및 혁신도시 건설 등 공급 정책도 내놨지만 집권 기간 내 공급 확대 효과를 보지 못했다.
공급 속도가 늦어지면 대책은 실기할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정부 집권 4년차인 2006년 서울 아파트 가격은 24% 넘게 폭등했다.
규제 일로를 걸었던 노태우 정부 때 상황을 살펴보자. 노태우 정부도 1988년 서울올림픽 특수와 경제 호황 등으로 투기판이 된 부동산 시장을 진정시키는데에 올인했다. 지금의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와 같은 원가연동제가 도입된 것도 이 시기다.
정권 출범 당해부터 각종 압박 카드가 줄기차게 쏟아졌지만 무엇보다 노태우 정부 부동산 정책의 ‘시그니처’는 일산·분당 등 1기 신도시 탄생이다.
1기 신도시는 1989년 200만호 공급 발표 이후 1991년 첫 입주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돼 총 214만가구가 단숨에 공급됐다. 당시 인프라 미비와 자족 기능 부족이라는 문제를 낳았음에도 1990년 37.62% 폭등했던 서울 아파트값은 1991년 4.5% 하락하며 진정됐다.
집값은 3년 동안 내리막길을 걷는다. 전국 주택 가격도 하락 전환했다. ‘물량 앞에 장사 없다’는 말처럼 계속된 채찍 뒤 엄청난 물량 공급으로 시장에 당근을 던지며 집값 안정에 기여했다.
문제는 노무현 정부의 일부 편협했던 정책과 시행착오를 현 정부가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학렬 더리서치그룹 소장은 “정부는 시장을 보지 않는다”라며 “공급이 적으면 가격이 올라간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그나마 3기 신도시 조성을 통한 수도권 주택 30만호 건설 등 공급 대책도 나왔지만 수도권 외곽지역에 집중돼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기엔 미흡하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여기에다 공공부문 후분양제로 공급 속도마저 더뎌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성환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수요가 집중된 서울지역 공급을 막고 인근 지역 주택을 공급하는 대책으로는 집값을 잡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전문가들은 서울의 유일한 공급 통로인 재건축·재개발 사업을 활성화해 주택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높이 제한 규제 등을 탄력적으로 운용하면서 수요가 몰리는 곳에 공급을 늘려 불균형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다.
양지영 양지영R&C연구소장은 “재건축 규제를 풀면 당장은 가격이 오르겠지만 장기적으로 집값이 안정된다”고 말했다.
주용남 도시와경제 소장도 “결국엔 공급이다. 국가 균형 발전이라는 허상을 깨고 도심지 고밀도 개발을 선택한 일본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설문에 참여하신 분들
△고준석 동국대 겸임교수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연구실장 △김성환 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 △김은진 부동산114 리서치팀장 △김학렬 더리서치그룹 부동산조사연구소장 △박원갑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수석전문위원 △서진형 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안명숙 우리은행 부동산투자지원센터장 △양지영 양지영R&C연구소장 △이동현 KEB하나은행 부동산자문센터장 △주용남 도시와경제 소장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 △홍춘욱 숭실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