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례는 문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2015년 도입된 시장질서 교란행위(제178조의2)는 우리 시장의 현실과는 다소 이질적인 영국의 시장 남용행위(market-abuse)에 대한 조치를 도입함으로써 실효성 없는 조문에 머물고 있다. 이런 불합리한 결과들은 금융위가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시장을 잘 이해하고 있는 금감원과의 협업이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생긴 결과다.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이 청문회에서 수사지휘권과 관련해 ‘경찰과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표현을 썼다. 검찰은 경찰에 대한 사법통제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조직이므로 수사에 대해 경찰과의 커뮤니케이션이 필수적이다. 그것을 수사지휘권이라고 법에서 규정하였다. 경찰 수사능력이나 인권보호 절차가 향상되었으니 ‘지휘복종’이 아니라 ‘상호협의’라는 개념으로 바꾸자는 의미로 읽힌다. 그런 면에서 금융위, 금감원의 관계도 검경의 변화로부터 배울 만한 점이 있다.
사실 금융위설치법은 제목대로 금융위 설치만을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다. 즉, 금융위보다 먼저 있었던 구(舊) 은감원, 증감원 등과의 관계를 고려해 만들어진 것이다. ‘금융위와 금감원을 설치해 금융산업의 선진화 등을 도모한다(제1조)’, ‘금융위와 금감원의 업무 수행 시 주의점(제2조)’을 규정하는 등 대등한 조직임을 전제하고 있다. 다만 금융위는 금감원에 대한 ‘지도와 감독’ 권한이 있는데(제18조) 이는 금감원이 민간특수법인인데도 공적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일 것이다.
금감원은 임직원 2000여 명 중 변호사 100여 명, 회계사 400여 명, 그 외에 금융 경력직원이나 석·박사 수백 명 등 업무 수행을 위한 충분한 인적 구성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금융위는 200여 명의 공무원으로 구성된 작은 위원회이기 때문에 ‘지도, 감독’을 해낼 수 있는 인적 구성은 갖추지 못했다. 그 결과 금감원으로부터 관련 자료나 법령 제개정을 위한 기초자료 등을 받는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행정고시 출신 몇 명만으로는 법에 규정한 ‘지도와 감독’을 수행할 만한 인적 역량이 충분하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렇다 보니 자본시장법에 엉뚱한 법률용어가 사용되고, 시장과 괴리된 제도를 도입하거나 금융위에 설치된 여러 위원회 안건의 늑장 처리 등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
이 같은 문제점을 시정하려면, 금융위에 무리하게 집중돼 있는 권한을 과감하게 조정해야 한다. 즉, 선택과 집중을 통해 금융위 업무 범위를 적절하게 조정하고 바꿀 필요가 있다.
첫째, 자본시장조사심의위원회(자조심)와 같은 기구는 원래대로 금감원에 돌려주는 것이 맞다. 금융위에 설치된 자조심이나 증권선물위원회는 업무의 내용이나 구성원이 사실상 중복되는데 왜 유사기구를 2개나 두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사실 증선위도 예전에는 금감원 조직이었다. 둘째, 금융위 설치목적과도 맞지 않는 자본시장조사단은 폐지해야 한다. 애당초 금감원 자본시장조사국, 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가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데 중복 조직을 만든 이유를 모르겠다. 이제는 금감원에 특별사법경찰관이 지명되었기 때문에 자조단을 계속 존치할 이유도 없다. 셋째, 일반 ‘규정’에 대한 제정권한을 금감원에 위임해야 한다. 금융위로서는 법과 시행령에 대한 제개정 권한에만 집중하는 것으로도 충분하고 하위법령인 규정에 대한 제개정 권한은 금감원이 갖는 것이 맞다. 넷째, 금감원 예산은 국비에서 갹출되는 것이 아니라 기업분담금으로 유지되므로 예산 편성 권한은 당연히 금감원이 가져야 하고, 예산 집행의 적정성에 대해서만 금융위나 감사원이 사후감독하는 것이 옳다. 지금처럼 매년 예산 편성 권한을 무기로 금융위가 금감원에 갑질하는 듯한 행태는 반드시 없어져야 할 적폐다.
검찰, 경찰도 시대가 변하여 새로운 관계 설정을 도모하고 있다. 금융위와 금감원도 이제는 최초의 대등한 협력 관계로, 각자 잘할 수 있는 부분에 역량을 집중하는 등 업무영역을 적정하게 조정해 국익을 도모할 시점이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