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문제에서 비롯된 한국과 일본 간 경제 갈등이 전 세계 하이테크 산업의 민족주의적 흐름을 부각시키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서플라이 체인에 문제가 생긴 국가들이 그 대안으로 자급자족 체제로의 전환을 도모하고 있어서다.
일본 정부는 4일부터 한국으로의 첨단 소재 수출 규제 시행에 들어갔다. 한국 대법원이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을 내린데 대한 보복 차원에서 국내외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강행한 것이다. 이에 따라 TV·스마트폰의 유기EL 디스플레이 부품으로 사용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반도체 제조과정에서 꼭 필요한 리지스트와 에칭 가스(고순도불화 수소) 등 첨단 소재 3개 품목을 수출할 때는 매번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동안 한국은 미국 호주 유럽 국가들처럼 이런 절차를 면제 받았었다. 이외에도 한국은 제3국으로 출하되면 핵무기나 화학무기에 사용될 수 있는 공작기계와 진공펌프 등의 품목에 대해서도 우대를 잃을 수 있다고 WSJ는 전했다.
이에 한국 정부는 하이테크 부품 생산에 사용되는 소재 및 장비에 대한 연간 1조 원 규모의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정부는 주요 산업에 필수적인 소재 등 여러 분야에서 수입처를 분산하고 국내 생산 능력을 강화하는 등의 지원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WSJ는 한국 정부의 이런 투자 계획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메모리 칩 분야의 글로벌 리더에게 즉각적인 처방이 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장기적으로는 주요 소재의 대체 조달처를 두 회사에 제공해야 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화웨이가 찾은 돌파구가 ‘자체 개발’이다. 산하 반도체 업체 하이실리콘을 전략적으로 육성해 해외산 부품 의존도를 대폭 낮추기로 한 것이다. 다만, 미중 무역전쟁이 광범위하게 장기화하면서 실효성은 의문이다.
일본도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다. 중일 관계 악화로 2010년 중국이 첨단 기술에 필요 원자재인 희토류의 대 일본 수출을 금지했을 때, 일본 기업들은 호주와 베트남에서의 수입을 늘리는 한편, 네오디뮴과 디스프로슘은 사용량을 줄이거나 재활용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니덱 등 전기자동차 (EV) 부품 공급 업체들은 영구 자석을 사용하지 않고 희토류가 필요없는 릴럭턴스 모터를 개발했다. 히타치금속은 2011년 미국 몰리코프(현 니오퍼포먼스머티리얼즈)에서 희토류 자성 재료를 공급받았다.
업계 전문가들은 일본이 주요 기술에서는 앞서 있기 때문에 한국이 반도체 서플라이 체인에서 자립하려면 수 년은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산업경제무역연구소의 이항구 연구원은 “반도체 소재를 개발하려면 많은 시간과 자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반면에 투자자들은 낙관적이다. 한국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생산용 소재를 만드는 솔브레인과 ENF테크놀로지 주가는 3일 각각 7.35%, 4.5% 급등했다. 반도체 제조에 사용되는 화학제품을 생산하는 램테크놀로지와 오션브릿지는 각각 16.3%, 10.1% 폭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