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의 정치펀치] 정치판의 막말, 누구 책임일까?

입력 2019-06-04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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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요새 우리나라 정치권을 휩쓸고 있는 단어는 ‘막말’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서로 상대에게 막말을 쏟아내고 있다. 막말에 대한 여론은 물론 좋지 않다. 그럼에도 정치인들은 막말을 쏟아낸다. 여론에 가장 민감해야 할 정치인들이 여론의 비난을 무릅쓰고 막말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막말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

과거에도 우리나라 정치판에서는 잊을 만하면 막말이 튀어나왔었다. 하지만 요새 정치판의 막말 빈도수는 과거에 비할 수 없이 잦아지고 있다. 그 이유는 정치판이 완전히 둘로 갈라지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과거 김대중 정권 당시만 해도 막말 때문에 상당한 정치적 타격을 받은 정치인들이 있었다.

하지만 17대 국회 이후에는, 막말을 한 당사자들이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고 보기는 힘들다. 막말을 했어도 다음번 총선에서 공천을 받았다. 오히려 당선된 이후 당내에서 중책을 맡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이 같은 까닭으로 정치인들은 막말을 주저하지 않는 경향을 보였다. 만일 막말을 한 정치인들이 선거에서 불이익을 받았다면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막말을 내뱉는 정치인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런 현상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내포한다. 우선 정치판의 막말은 정치적, 사회적 양분화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17대 국회 이후부터 막말 정치인들이 받는 정치적 타격은 그리 크지 않았던 이유는 그 당시 우리 정치판이 본격적으로 둘로 갈라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기억하듯 17대 국회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 민심의 거센 역풍 속에 치러진 총선으로 구성됐다.

여기서 노무현 당시 대통령만이 갖는 특징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민주화 이후에 등장한 과거 대통령들은 대부분 지역 기반을 갖고 있었고, 이런 지역 기반은 이들이 권력의 최고 정점에 오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달랐다. 그는 영남 출신으로는 보기 드물게 호남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는 지역갈등의 극복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아주 훌륭한 본보기가 될 만한 일이었지만, 이런 훌륭한 측면은 또 다른 문제점을 잉태했다. 바로 정치인에 대한 ‘팬덤 현상’이다. 이때부터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에 대한 팬덤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이는 한국정치사에 있어서 특징적 현상이라고 부를 만하다.

우리나라 정치에 만연해진 팬덤 현상은 이념보다 특정 정치인에 대한 추종이 우선시되는 현상을 초래했다. 적지 않은 유권자가 정치를 이성적 차원에서 바라보기보다는 감성적 차원에서 바라보게끔 만드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정치를 감성적 차원에서 바라보게 되면 자신이 추종하는 정치인을 반대하는 세력을 ‘타도의 대상’으로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정치판에서 발생한 현상은 사회적으로도 증상이 전이되게 마련이다. 정치적 양분화는 결국 사회적 양분화를 초래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인들은 진영 논리에 보다 충실하려고 노력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진영 논리에 충실하기 위해, 상대를 ‘한방’에 제압하려는 노력을 하게 되고 그런 과정에서 막말을 하게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정도의 막말을 내뱉은 정치인도 장래에 별 지장을 받지 않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정치인들의 막말 퍼레이드에는 유권자들의 책임도 없지 않다. 막말 정치인들에 대해 표면적으로는 비판하지만 내심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는 유권자들도 적지 않고, 그렇기에 이들 막말 정치인들이 다음 선거에서 심판을 받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 정치판을 개선하고 막말을 추방하려면 유권자들이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선거 본연의 의미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즉, 선거의 심판 기능을 살려 품위를 떨어뜨리는 행위를 하는 정치인들에 대해 확실한 심판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정치인의 막말을 탓하기 전에 스스로의 정치적 의사 표현에 대해 반성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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