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가을 임기를 마치는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의 후임 자리를 놓고 벌써부터 물밑 경쟁이 치열하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최근 보도했다.
26일(현지시간) 유럽의회 선거가 종료됨에 따라 유럽연합(EU)은 주요 기구의 차기 지도부 구성 논의에 돌입한다. 특히 유로존이 경기 둔화와 정치 불확실성으로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EU의 금융·통화정책을 이끌 ECB 차기 총재 자리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지대하다.
EU 28개 회원국 정상들의 모임인 EU 정상회의는 28일 브뤼셀에서 비공식 회의를 열고 ‘빅5’ 인선 문제 논의에 들어간다. EU 빅5는 EU 정상회의 의장과 집행위원장, EU 유럽의회 의장, EU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EU 외교·안보 고위대표가 해당한다.
이 가운데 ECB 총재 후임을 두고 독일, 프랑스 등 주요 국가들의 치열한 접전이 예상되고 있다. 초저금리와 양적완화 등 ECB의 경제 정책이 각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에서 주도권을 잡아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성장 부진을 겪고 있는 유럽 경제는 물론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무역전쟁까지 과제가 산적해 있다는 점도 ECB 차기 총재에 대한 시장의 관심을 키운다.
이탈리아 로마 출신인 드라기 현 ECB 총재는 10월 임기가 만료된다. 후임으로 최소 5명이 거론되고 있다. 우선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의 옌스 바이트만 총재가 유력한 후보로 거론된다. 바이트만 총재는 드라기 총재의 정책에 적극 반대해온 인물이다. 프랑스에서는 프랑수아 빌루아 드 갈로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와 드라기의 ‘오른팔’ 브누아 쾨레 ECB 이사가 꼽힌다. 이외에 올리 렌 핀란드 중앙은행 총재와 그의 전임 총재인 에르키 리카넨 등 핀란드인 2명도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핀란드는 독일처럼 높은 국가 신용등급을 자랑하며 통화정책에는 보수적인 기조를 보여 왔다.
이 와중에 가장 수세에 몰린 국가는 바로 이탈리아다. 드라기 현 총재가 물러나면 집행위원회 위원 가운데 이탈리아 출신이 제로(0)가 된다. EU의 경제 정책을 조율할 수단이 사라진다는 의미다. 이탈리아는 경제 성장 둔화와 국내총생산(GDP)의 130% 이상되는 부채를 안고 있다. 이탈리아 경제는 이미 지난해 3분기와 4분기에 연속으로 전 분기 대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진작부터 침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진단까지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지난해 집권한 신정부기 포퓰리즘 정책을 내놓으면서 EU 집행위와 정면충돌했다. 더욱이 ECB가 지난해 말 양적완화 프로그램을 종료하면서 채권 등 자산 매입을 중단하자 이탈리아 국채 금리는 상승 압력을 받고 있다. 이는 주택담보대출, 기업대출 등 경제 전반에서 차입 비용을 높이고 있다. 이탈리아는 사실상 누가 차기 총재 자리를 가져가느냐에 기대는 운명에 놓여 있다.
만일 독일 출신 바이트만이 총재가 되면 현재 ECB 집행위원회 독일 출신 위원인 사빈 로텐슐래거가 사임하고 그 자리를 유로존의 3위 경제대국인 이탈리아가 차지할 수 있다. 그러나 핀란드가 되면 룩셈부르크의 이브 메르시가 2020년 임기를 마칠 때까지 이탈리아는 목소리를 내기 힘들어진다고 블룸버그통신은 평가했다.
유럽 각국 정부는 ECB 총재 후보를 지명하며 그중에서 각국 재무장관들이 적임자 1명을 골라 각국 정상들에게 최종 결정을 맡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