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세계 휴대폰 시장을 호령했던 핀란드 노키아가 재기를 모색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기술 우위를 다투고 있는 틈을 타 양쪽에 모두 접근하는 ‘투 트랙’ 전략을 쓰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휴대폰 제왕이었던 노키아는 현재 잘 나가는 통신장비업체다. 중국의 화웨이테크놀로지를 제외하고 시장 2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1980년대 휴대폰 시장을 개척한 노키아는 2000년대 글로벌 시장 점유율이 40%까지 올라간 절대 강자였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지형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애플의 아이폰이 지배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스마트폰 사업에서 때를 놓친 노키아는 2013년 통신장비 부문만 남기고 70억 달러에 회사를 마이크로소프트에 팔았다. 이후 휴대폰 안테나, 전화 스위치, 인터넷 라우터, 차세대 5G 무선 시스템 구성요소 개발에 주력했다. 2015년 프랑스 라이벌 기업을 사들이며 확장을 꾀했고 시장 1위 업체인 화웨이를 바짝 뒤쫓고 있다.
2015년 이후 수익 정체가 나타나는 상황에서 미국 시장에 새로운 문이 열리고 있다. 미국은 안보 위협을 이유로 자국 기업은 물론 동맹국에도 화웨이를 멀리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미국의 반화웨이 방침이 라이벌인 노키아에게는 기회가 된 것이다. 노키아 최고경영자(CEO) 라지브 수리는 “전 세계가 무선 시스템을 5G로 업그레이드하려고 노력 중이다. 안전한 5G 제공이 필수”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노키아가 미국의 거물 기업 모토로라와 알카텔-루슨트를 인수한 것도 워싱턴의 호감을 사는데 도움이 됐다. 중국을 피하고 싶은 미국도 노키아에 도움을 청했다.
미국과 손을 잡은 노키아는 다른 손으로는 중국에도 구애를 보내고 있다. 중국 국영기업과 조인트 벤처 형식으로 중국에서 입지를 다지기 위해 노력 중이다. 홍콩, 대만을 포함한 중화경제권에서 1만7000명을 고용했다. 자국 핀란드에서 고용한 인원의 3배 수준이다. 중국에서 연구소 6곳도 운영 중이다. 수리 CEO는 “우리는 중국과 친구가 되길 원한다”며 “우리의 목표는 중국의 제1 공급원이 되는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지난해 노키아 매출 수익의 10%가 중국에서 나왔다.
노키아의 ‘양손전략’은 냉전시대 핀란드의 전략과 닮았다고 WSJ는 분석했다. 당시 핀란드는 유럽국가들과 동맹을 맺으면서 한편으로 소비에트와의 관계도 유지했다.
작전은 먹혀들고 있다. 노키아는 지난해 7월, 중국의 최대 무선통신업체 차이나모바일과 11억 달러짜리 거래를 체결했다. 3주 후엔 미국 티모바일과도 35억 달러 규모의 5G 설비 판매 거래를 체결했다.
노키아가 화웨이를 따라잡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화웨이가 중국을 넘어 세계로 뻗어나간 지 20년이 됐다. 개발도상국에서 저가 공세를 펼치며 입지를 확보한 화웨이는 선진국으로도 세를 넓혀가고 있다. 수리 CEO는 “지금 만족스럽지 않지만, 우리는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