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찬국의 세계경제] ‘유아독존’ 트럼프의 연준 흔들기

입력 2019-04-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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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통용되는 돈이 미국 달러이다. 그래서 달러화를 관장하는 미국의 중앙은행 연방지급준비제도(이하 FRB)는 가끔 세계의 중앙은행처럼 역할한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국제 금융시장이 얼어붙자 동파 사고가 터지면 1930년대 대공황이 재현된다는 공포가 세계경제를 덮쳤다. 이때 벤 버냉키 의장이 이끄는 FRB가 기민하게 대응하여 주요국에 달러화를 넉넉히 공급하면서 참사를 막았다.

통화정책을 독점하고 감독권까지 보유한 FRB는 미국 공적기관들 중에서도 신뢰도가 높다. 1930년대 출범한 FRB에 비공개적인 압력을 행사하는 일이 있었지만 FRB 이사와 의장의 임명권자인 대통령도 통화정책에 대해 언급을 삼가며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존중하는 관행을 확립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FRB가 전통과 관행 타파의 유아독존적 트럼프 대통령의 구설에 오르며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첫 번째 소식은 작년 11월 미국 중간선거 즈음에 나왔다. 트럼프는 자신의 제일 큰 성과인 법인세 대폭 인하의 효과로 경제와 주가가 활황세를 보여야 함에도 작년 하반기에 주가가 하락한 것을 FRB의 금리 인상 탓으로 돌렸다. 급기야 자신이 임명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제롬 파월 FRB 의장을 해임하려 한다는 보도가 나오며 월가(街) 및 국제 금융시장에 파장을 일으켰다. 트럼프는 작년 여름부터 공개적으로 파월 의장이 저금리를 유지할 것을 기대했는데 금리를 올린다고 불평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9월 말 금리 인상 이후 중간선거 유세에서는 FRB가 ‘미쳤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9월 말 금리 인상이 적절했는지는 이론(異論)이 있을 수 있다. 9월 말은 11월 초 중간선거에 좀 가까운 감이 있다. 하지만 FRB는 이전 해 말부터 고용사정이 뚜렷하게 개선되며 실물경제 호조세가 지속되는 것을 감안하여 작년 중 3~4차례의 금리 인상을 미리 예고했었기에 9월 말 인상이 무리한 결정이었다고 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비난은 정책 결정의 근거가 합당한가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주가 하락에 대한 신경질적인 반응이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최근에는 펜스 부통령까지 금리 인하를 주장하고 나섰다.

두 번째 소식은 트럼프 대통령이 추천한 FRB 이사회 후보자 2인에 대한 논란이다. 임기가 14년이나 되며 의장과 함께 여러 결정에 참여하는 중요한 공직이다. 한 명은 공개적으로 트럼프의 FRB 비판에 동조하는 보수파 논평가이고, 다른 한 명은 지난 대선 잠시 대선후보였던 사업가 출신 정치인이다. 최근 뉴욕타임스 사설의 평가는 한마디로 ‘깜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필자가 FRB에 재직했던 1990년대에만 하더라도 FRB의 고위 정책 결정자들 중 학자 출신은 소수였다. 그런데 의장직이 앨런 그린스펀(1987~2006년 재임)에서 프린스턴대 교수 출신 벤 버냉키(2006~2014년)로 넘어간 이후 저명 경제학자들이 대거 진출한다. 후임 재닛 옐런(2014~2018년) 의장도 UC버클리대 교수 출신으로 이런 분위기가 이어졌다.

근래 학자 출신들의 비중이 줄었으나 전문성을 중시하는 시각은 여전하다. 그런 정책 숙의(熟議) 기관에 전문성보다는 정파적 충성심으로 두각을 보인 사람들이 추천된 것이다.

이들이 상원에서 인준이 되어 취임하면 이유 불문하고 금리를 낮추어 주가를 올려야 한다고 주창할 것으로 보인다. 인준 과정이 남아있고, 통과하더라도 7인으로 구성된 이사회, 그리고 12인의 지역 연준 총재들도 참여하는 위원회의 결정에 2인의 영향력이 제한적일 것이다.

물론 학자들이 꼭 좋은 정책 결정자라는 법은 없다. 그렇지만 임기응변적으로 대응하는 사람들에 비해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제시하는 학자들의 논의는 정책이 크게 잘못될 개연성을 줄인다. 큰 위기 때 세계의 중앙은행으로서 역할을 할 FRB의 결정이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물론 매우 협소하게 국익을 정의하고 ‘미국 최우선’을 외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런 초국가적 역할은 관심 밖의 일일 듯하다.

나라 안팎으로 정치지도자들이 안정보다 논란거리 발굴에 더 열심인 것 같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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