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떠나면서 장남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의 경영권 승계에 국민연금이 힘을 실어줄지 주목된다. 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의 2대주주인 강성부펀드(KCGI)가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하는 가운데, 3대주주로 자리한 국민연금은 또다시 캐스팅보트를 쥘 전망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9일 “관련 안건이 오르면 우선적으로 기금운용본부에서 판단하게 된다”며 “판단이 어려울 경우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를 개최해 찬반 여부를 가리게 된다”고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앞서 국민연금기금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는 지난달 26일 대한항공 정기 주주총회 안건의 의결권행사 방향을 심의한 바 있다. 기금본부와 수탁위 분과위원회 및 전체위원회까지 거친 결과 조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선임 반대를 최종 결정했다.
기금운용지침에 따르면 주주권 및 의결권행사는 원칙적으로 공단에서 행사하지만, 판단하기 곤란한 사안은 기금본부의 분석 등을 거쳐 수탁자위에서 결정하게 된다. 분과위 요구나 전체위 위원 5인 이상이 요구, 위원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경우에는 전체위에서 심의‧의결하게 된다.
KCGI는 한진칼 지분 확대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상장주식에 대한 상속세는 사망일을 기준으로 전후 2개월 종가의 평균을 기준으로 한다. 때문에 주가가 오르면 상속세가 늘어나고 한진 측에 부담이 커져 KCGI 입장에선 1석2조인 상황이다.
한진칼 지분은 조 회장 등 특수관계인이 28.95%, KCGI가 13.47%를 보유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6.7%로 뒤를 잇는다.
업계에서는 상속세 납부 과정에서 오너일가 지분이 내려가고, KCGI와 국민연금을 합한 지분이 이를 웃돌면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반면 전문가들은 10%룰 등의 이유로 국민연금이 KCGI와 연계하는 건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정성엽 대신지배구조연구소 본부장은 “가장 큰 문제는 경영권 승계인데 한진칼 지배구조에서 조양호 회장의 지분이 가장 높고 자녀들은 2%대에 불과해 변화의 단초가 될 수 있다”며 “하지만 공적인 성격인 국민연금이 일반펀드와 연계해 개별기업의 지배구조에 직접 관여해 영향을 끼치는 건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 있다”고 진단했다.
정 본부장은 “국민연금이 KCGI와 같이하게 되면 당장 10%룰에 걸려 한 주 변동도 신고하고 6개월 단기차익을 반환하는 의무가 생긴다”면서 “이는 적극적 주주제안 활동의 제한 요건이 될 수 있다. 올해도 한진칼에만 주주제안을 하고 대한항공은 하지 않은 이유”라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