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걸로 끝이 아니다. 늘 그렇듯이 2월에는 설날이 있다. 새로운 결심을 하고자 하는 이에게 양력과 음력, 이렇게 두 번의 1월 1일은 고마운 일이다. 한 번 실패를 맛봤으니 다시 실패하지 않기 위해 전략 또한 좀 더 구체적이다. 기왕에 새 결심을 했으니 이번에라도 금연하길 바라지만 지난 1월 한 달이 허무하기만 하다. 그나저나 “왜, 0월이 없는 거지?” 12월을 마치고 1월이 오기 전에 새로운 한 해가 태어나듯 0월이 있다면 시간을 가지고 진득하니 고민의 시간과 준비를 해뒀을 텐데 바로 실전에 돌입하듯 1월이 오니 마음도 바쁘고 정신도 없는 듯하다.
숫자의 시작을 0과 1중 무엇으로 하는 것이 맞을까. 어른들은 1부터 10까지 세는 버릇이 일반적이다. 인식하지는 못했지만 그렇게 배워왔기 때문이다. 반면 어린아이들은 0부터 숫자를 센다. 아마도 요즘 유치원에서는 0부터 9까지라고 가르치는 모양이다. 숫자의 시작이 0부터인 것은 이치로 보아 맞다. 온전한 1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가 요소로서 구성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럽에 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버튼을 보면 ‘0층’이 존재한다. 우리가 로비라고 말하는 ‘Ground Floor’를 0층이라고 한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로비 층을 당당히 ‘1층’이라고 부른다. 시쳇말로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의 결정판이다. 아기가 태어나면 한 살. 그 후 12월 31일을 넘기면 두 살이 된다. 법적 나이는 만 나이이지만 “몇 살이야?”라고 물었을 때 아이는 두 2살!”이라고 손가락 두 개를 펼치는 게 다반사다. 이 때문에 최근에 한 국회의원이 공식적인 나이 체계를 만 나이로 통일하자고 법안 발의를 했다고 하니 숫자의 시작은 0이라고 봐야 한다.
0의 부재로 인해 애로사항을 겪는 예는 역사에도 존재한다. 기원전과 기원후를 가리키는 기점이 예수님이 태어난 해부터 시작한다는 것쯤은 상식이지만 이 명명의 창시자인 로마의 수도원장이었던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가 서기 시작 연도를 0부터가 아닌 서기 1년으로 명명한 것에서 문제가 시작된다. 이 때문에 21세기라고 명명되는 기간의 시작 연도도 2000년이 아니고 2001년이 된다. 따라서 숫자의 시작은 0이 맞다.
왜 우리만 유독 로비 층을 1층이라고 부를까. 0이 없고 1부터 시작하는 것이 공짜 심리의 발현 같기도 하면서, ‘빨리 빨리’ 서두르는 문화도 0을 건너뛰고 1부터 시작한 것에서 기인한 게 아닐까 싶다. 좋게 본다면야 시작이 반이라는 긍정적 마인드로 0 없이 1부터 시작했기에 잘 밀어붙이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0 없이 1부터 시작한다는 것은 준비가 덜된 상태에서 막 바로 현장에 투입되는 모양새이기에 실수도 실패도 많아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늘 1월은 어수선하다.
0이 없어서 바쁘게 사는 것인지, 바빠서 0이라는 단계를 생략하는 것인지 그 이치는 모르겠다. 다만 0이 있음으로써 시간을 두고 고민하고, 준비할 수 있는 삶이 되기를 희망해본다. 0부터 9까지의 순서 정립을 시작해야 0이라는 단계에 소홀하지 않고 더 많은 체크리스트를 가지고 있어야 삶도 세상도 실패의 횟수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여유를 가지되 느릿하지는 말며 고민의 8할을 0단계에 쏟아부어야 0의 존재는 그 사명을 다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2020년 달력에는 뜬금없이 ‘0월’이 보너스처럼 생겨났으면 좋겠다. 허황될지언정 1월은 우리에게 있어 0월인 셈이다. 아직 남은 며칠 동안이라도 0월의 활용을 고민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