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풍에 몸살 앓는 한국] 힘겹게 뚫은 이란 시장, 美 ‘원투펀치’에 국내기업 K·O

입력 2018-11-18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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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수금 2000억 일러… 중국 기업은 이란 제재 빈틈 노려

한때 신시장으로 주목받던 이란이 ‘계륵’ 신세가 됐다. 미국의 제재가 부활하면서 기업들의 사업 여건이 급속히 나빠졌지만 그렇다고 포기하기에는 아까운 시장이기 때문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는 9일 발표한 ‘대(對)이란 제재 복원 중동 주요국 및 기업 반응조사’ 보고서에서 미국이 이란에 대한 제재를 복원하면서 이란에 진출했던 국내 기업들도 사업 중단이나 철수 등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이달 5일(현지 시간) 이란산 석유와 석유제품 등의 거래를 금지하고 이란중앙은행 등 이란 금융기관과의 거래를 금지하는 제재안을 발표했다. 미국은 올 8월에도 이란과의 귀금속, 철강, 소프트웨어 등의 거래를 금지하는 제재를 내놨다. 이번 제재안에는 세컨더리 보이콧(제재 대상과 교역하는 기업·국가까지 제재하는 조항)이 포함돼 있어 이전보다 훨씬 강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제 제재가 부활하면서 이란 경제는 악화일로다. 국제통화기구(IMF)는 경제적 고립으로 이란 경제가 올해와 내년 각각 1.5%, 3.6% 마이너스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IMF는 경제난으로 이란 리알화(貨)의 가치가 떨어지면서 물가 상승률도 30%대로 뛸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 9월 말 코트라가 실시한 현장 조사에 따르면 이란에 수출된 LG냉장고는 올 초보다 150%, 삼성 핸드폰은 109% 가격이 올랐다.

경제가 악화하면서 한국과의 교역을 이끄는 이란중앙은행도 휘청거리고 있다. 한국과 이란의 교역은 이란 중앙은행이 자국 무역업체에 원화를 배정하면 업체는 그 돈으로 한국 제품을 수입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최근 이란중앙은행이 외환 부족 등으로 원화 배정을 미루면서 이란에 진출한 한국 기업까지 받아야 할 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쌓인 이란 내 한국 기업의 미수금은 지난달 기준으로 2000억 원이 넘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란 사업을 축소·중단하거나 아예 철수하는 기업도 생겨나고 있다. 코트라는 1차 제재 발표 이후 61개 기업이 이란 사업을 중단한 것으로 파악했다. 한국 건설사 8곳도 수주했던 대형 프로젝트가 엎어지면서 인력을 축소했다. 다른 회사들도 2차 제재의 여파를 관망하며 사업 지속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에 진출한 한국 기업인 A 씨는 “현재 많은 한국 기업들이 이란 지사 폐쇄 및 수출 중단을 하고 있는 상황이며 연말에는 일부 상사 등 제한된 범위의 지사 운영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회사들이 철수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단독 제재이기는 하지만 소위 세컨더리 보이콧 조항의 강력한 적용으로 인해 제재의 범위가 2012년도의 범세계적인 제재와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며 제재의 체감 강도는 더욱 강한 편”이라고 지적했다.

이란 사업을 정리하는 것도 쉬운 선택은 아니다. 다른 기업인 B 씨는 “중소기업은 이란을 주 시장으로 한 경우 단시일 내 대체 시장을 찾기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섣불리 이란을 빠져나왔다가 제재로 인한 공백을 노리고 있는 중국이 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근 자동차 등 이란 시장에서는 중국이 자국 제품의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미국의 제재에 동참하지 않아 운신이 자유로운 데다 경쟁국들이 제재 여파로 이란을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A 씨는 “이란 수입상들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거래가 가능한 중국 회사와의 거래로 돌아서고 있는 상황”이라며 “아직은 중국산 제품이 한국산을 대체하기에는 미흡하지만 이런 상황이 일정 기간 지속이 된다면 향후 제재가 해제된다고 해도 우리 기업이 이란 시장을 다시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고 걱정했다.

코트라 측은 이란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 “이란과의 거래 시 거래 품목 및 거래 상대방(바이어)의 제재 대상 여부 등을 꼼꼼히 확인해 불의의 피해를 방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향후 제재 완화에 따른 이란 시장 재진출에 대비해 이란 기업과의 네트워크 유지와 정보 수집 등 비판매 분야 협력을 지속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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