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기조 고착된 車노조…소비시장 독점과 노동계 장악 탓

입력 2018-11-15 16:06 수정 2018-11-15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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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인권운동 발달과 함께 성장…노동계 영향력 확대가 '강성' 불러

▲지난 5월 현대차 노조의 임단협 투쟁 출정식 모습. (연합뉴스)
▲지난 5월 현대차 노조의 임단협 투쟁 출정식 모습. (연합뉴스)

한국의 노동시장, 특히 자동차 기업의 노동조합은 수십 년 째 ‘강성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특정 기업의 노조가 소비시장을 독점하고, 나아가 노동 시장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추면서 스스로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에서 시작한 시민운동은 사회적 공감대를 발판삼아 새로운 시대를 맞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출발점이 같았던 노동운동, 특히 자동차 노조는 여전히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집단이기주의’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대표적인 노동운동가 출신의 정치인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12일 취임 6개월 기자간담회를 통해 노동계를 향해 쓴소리를 남겼다. 홍 원내대표는 한국지엠 노조를 특정하며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대” “항상 폭력적인 방법을 쓴다”라며 감췄던 속내를 드러냈다. 그 스스로가 한국지엠의 전신인 대우자동차 노조 출신이지만 발언의 수위는 어느 때보다 높았다.

◇소비시장 독과점과 노동계 영향력이 강성기조 불러 = 홍 대표의 말마따나 자동차 노조는 수십 년 째 강성기조를 이어오고 있다. 시대가 변했지만 여전히 구태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도 여기에서 나온다.

거슬러 올라가면 1980년대 중반 민주화 운동이 시작되면서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함께 커졌다. 서울올림픽을 전후로 급격한 경제성장이 뒷받침되면서 이들의 목소리는 더욱 거세졌다.

학계에서는 본격적인 강성 기조가 시작된 변곡점으로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꼽고 있다. 한국기업경영학회 관계자는 “1990년대까지 자동차 노조의 쟁의행위는 임금인상과 복지향상에 초점을 맞춰져 있었다”며 “1990년대 중후반 민주노총의 출범과 IMF 외환위기 사태를 겪으면서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한보철강과 기아산업 등 굵직한 대기업이 줄줄이 부도사태를 맞으면서 산별적인 개별기업 쟁의행위가 본격적인 강경기조로 선회했다”며 “그 전에 없었던, 구조조정이라는 생존권이 달린 문제를 놓고 노조가 사측에 맞서면서 뚜렷한 강성 기조가 발생했다”고 덧붙였다. 급여인상과 복지 등을 주장했던 노조가 구조조정에 맞서기 시작하면서 강성으로 변모했다는 뜻이다.

IMF 이후 자동차 산업의 구도가 재편된 것도 자동차 노조의 강성기조를 뒷받침했다. 1990년대까지 현대차와 기아산업, 대우차로 짜여진 3파전 구도는 IMF 이후 현대차가 기아산업을 인수하면서 사실상 독점적 구조로 변했다.

내수 소비시장에서 현대ㆍ기아차가 점진적으로 판매 점유율을 확대하면서 이들 노동조합의 영향력도 동반 상승했다. 상급단체(민노총)는 물론 전체 노동시장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만큼 덩치를 키운 때였다.

올 상반기 기준 민노총 정규직 조합원 약 60만 명 가운데 현대차와 기아차 노조원만 10만 명을 훌쩍 넘는다. 노조가 없는 삼성전자(약 10만2000명)보다 많은 근로자가 같은 기조 안에서 노동권을 주장하고 있는 만큼, 이들은 사회적 대타협과 무관하게 자신만의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결국 완성차 노조는 소비시장과 노동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우면서 사회적 타협과 무관한 행보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강성 기조는 더욱 거세지기 시작한 셈이다.

▲1987년 출범한 현대차 노조는 소비시장 점유율과 노동계 영향력이 커지면서 회사 실적과 무관하게 강성기조를 이어오고 있다. 사진은 조합원 찬반투표 개표 모습. (사진제공=현대차 노조)
▲1987년 출범한 현대차 노조는 소비시장 점유율과 노동계 영향력이 커지면서 회사 실적과 무관하게 강성기조를 이어오고 있다. 사진은 조합원 찬반투표 개표 모습. (사진제공=현대차 노조)

◇기득권 포기한 전미車노조 덕에 GM과 포드 부활 = 완성차 업계에서는 자동차 노조의 이러한 강성기조가 조만간 한계점에 봉착할 것이라는데 이견이 없다. 글로벌 주요 자동차 기업이 노동조합의 막강한 힘 앞에서 힘없이 무너진 사례가 여럿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독일은 1980년대 산업고도화를 시작하면서 자동차 기업과 노동자가 대타협을 이뤘다. 일찌감치 ‘상생’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한 것. 이들의 사회적 타협은 자연스레 21세기 자동차 시장을 주도하는데 중요한 배경이 되기도 했다. 일본은 노동시장 자체가 강경 기조와 거리가 멀었던 덕에 대규모 리콜과 동일본 대지진 등의 부침을 겪으면서도 빠르게 글로벌 톱 수준으로 복귀했다.

반면 신자유주의와 노동자의 인권을 앞세웠던 미국과 영국은 사정이 다르다. 2008년 리먼쇼크 직후 이른바 미국의 빅3는 줄줄이 파산했다. 크라이슬러는 이태리 피아트에 흡수합병됐고 포드와 GM은 대규모 구고조정에도 파산을 결정했다.

쓰러졌던 포드와 GM이 2010년대 들어 다시 부활할 수 있었던 배경 가운데 하나가 정부의 천문학적 공적자금 투입, 그리고 전미자동차노조(UAW)의 기득권 포기가 주효했다.

영국은 사정이 더하다. 맹목적으로 노동자 계급 중요성을 강조했던 영국도 결국 롤스로이스와 미니 등 자국 자동차 브랜드를 독일 기업에 빼앗겼다. 자존심과 같았던 재규어&랜드로버는 심지어 한때 식민통치로 지배했던 인도 기업에 팔리기도 했다.

결국 사회적 공감대 형성과 대타협을 바탕으로 한국의 자동차 노조 역시 새로운 시대에 맞춰 변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통적인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강성 기조를 앞세우는 사이, 이미 자동차 기업의 위기는 성큼 다가온 상태다. 자칫 현재와 같은 강성기조를 유지하면 기업은 물론 산업전체와 노조의 공멸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관계자는 “한때 인권운동과 노동운동은 궤를 함께 했지만 시대가 지나면서 다른 노선으로 갈라지고 있다”며 “강성 기조를 유지해야만 ‘훌륭한 노조 집행부’라는 편견도 더 이상 설자리가 없는 시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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