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빼로 데이는 1990년대 부산의 어느 여고에서 시작됐다. 여학생들이 서로 ‘살 좀 빼라’고 놀리며 빼빼로를 나눠 주자 지역에서 소비가 급증했고 이를 눈여겨본 제과회사가 본격적으로 마케팅에 나선 것이다. 자그마치 1년 판매량의 50~60%가 이날 팔린다고 한다.
또 이날은 제1차 세계대전 종전일이고, 미국에서는 Veteran’s Day라는 재향군인의 날로 국가 공휴일이다. 영연방 국가에서는 Remembrance Day, 우리의 현충일에 상응하는 날이다. 그리고 한국전쟁에 참전한 세계 각국의 노병들에게 특별한 날이기도 하다. ‘Turn toward Busan’의 날이다.
캐나다에 사는 한 백발 노인은 매년 11월 11일 아침이 되면 매우 분주하다. 그는 1950년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꿈 많고 늠름했던 청년은 이제 늙어 백발의 노인이 되었다. 힘겨운 몸을 이끌고 깔끔하게 다린 정복을 차려입고 창가에 앉아 11시가 되기를 기다린다. 11시 정각, 그는 멀리 태평양 건너 부산을 향해 1분간 묵념을 올린다. 이 노병의 이름은 빈센트 커트니, 1분간의 묵념을 ‘Turn toward Busan’이라 한다.
커트니 노병은 2007년 유엔군 참전용사의 희생을 기리고 세계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11월 11일 각국의 시간으로 11시에, 각자의 위치에서 부산을 향해 1분간 묵념할 것을 제안했다. 이 제안이 한국과 각국의 참전용사들에게 받아들여졌다. 부산 유엔기념공원에는 2300여 명의 참전용사가 잠들어 있다.
그런데 매년 그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숫자가 늘다니, 전쟁이 끝난 지 65년인데, 왜? 2009년 부산 유엔기념공원 사무실로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됐다. 편지 내용은 이랬다. “한국전쟁 때 전사한 케네스 존 휴머스턴 대위가 유엔공원에 안장돼 있습니다. 2008년 숨진 그의 아내 낸시 휴머스턴이 남편 곁에 묻히고 싶다고 유언을 남겼습니다. 허락해 주시기를 요청합니다.”
전쟁 당시 호주연대 3대대 소속의 휴머스턴 대위는 1950년 10월 3일 왜관 근처 낙동강 전투에서 전사했다. 전우들은 그의 시신을 전장에 가묘했다가 이듬해 부산 유엔공원에 안장했다. 낸시는 호주군 간호장교로 일본에 파견 중에 휴머스턴과 결혼했다.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1년 남짓, 남편 사망 후 낸시는 간호사로 사회복지시설에서 봉사하며 평생을 홀로 지냈다. 자녀도 없었다. 2008년 낸시는 91세로 생을 마감하면서 남편 곁에 있고 싶다고 조카에게 유언했다. 1년 후 그녀의 유언은 실현됐다.
2012년 4월 22일, 푸른 눈의 노병이 영원한 안식처로 한국을 택했다. 그의 이름은 ‘아치 허시’, 캐나다군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지 62년 만에 형이 잠든 부산을 죽어서야 찾은 것이다. 형 조셉과 동생 아치는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작은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스물한 살이 되던 해 동생은 한국전쟁에 자원입대해 한국으로 향했다. 동생이 걱정되었던 형 역시 다음 해 자원입대, 동생과 같은 연대에 배속됐다. 그러나 계속되는 전투는 두 형제의 만남을 허락하지 않았다.
1951년 10월 13일, 참호경비에 나섰던 동생은 캐나다에 있는 줄로 알았던 형이 총상을 입고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형은 동생의 품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때 동생은 형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참전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종전 후 동생은 고향으로 돌아가 가정을 꾸리고 외동딸을 두었다. 그러나 처참한 전쟁 경험과 형의 죽음은 아치에게 트라우마를 남겼다. 전쟁영화를 보며 우는 날이 많았다. 동생은 25년간 투병 끝에 형 곁에 묻히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떴다. 외동딸 데비가 그 유언을 완수했다.
다행히, 올해 ‘Turn toward Busan‘은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할 수 있을 것 같다. 참전용사들이 희망했던 평화, 평화는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다.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무기를 놓는다고 오는 것도 아니다. 철저한 방어훈련은 평화를 단단하게 할 것이다. 11월 11일 11시, 1분간의 묵념도 그 과정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