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후 서울시청 앞에 모인 여의도시범아파트 주민들은 오래된 아파트의 불안함, 불편함을 호소했다. 주택시장 불안정을 이유로 주거환경 개선을 막는 정치행위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여의도시범아파트 주택재건축정비사업위원회는 이날 서울시청 앞에서 재건축 촉구 집회를 열었다. 집회에 참석자는 300여명. 50~70대가 주류인 주민들은 생존권, 재산권을 지키기 위해 참석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집회에는 시범아파트 주민뿐만 아니라 인근 광장·공작·한양·대교아파트 주민들도 합세했다. 이들 역시 재건축을 기다리고 있는 단지들이다.
여의도시범아파트는 47년 전인 1971년 10월 입주했다. 가구수는 1584가구로 여의도 일대 노후아파트 가운데 가장 많다. 같은해 12월 입주한 초원아파트(153가구)와 함께 여의도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다. 시범아파트는 지난해 사업자를 선정해 재건축을 추진했으나 서울시의 ‘여의도 마스터플랜’에 발목이 잡혀 현재 답보 상태다.
입주민들은 50년 가까이된 아파트에서 지내면서 불편함과 불안함이 날로 심해진다고 하소연했다.
집 안에 설치된 100볼트(V) 전압을 220볼트로 바꾸기 위해 사비를 들여 공사를 하는가 하면, 흔들거리는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불안하다는 게 주민들의 얘기다.
시범아파트에서 거주한 지 35년 된 H씨는 생활시설 배관이 녹슬어 불편함이 크다고 말했다. H씨는 “화장실과 복도에 라디에이터가 설치돼 있다. 화장실 라디에이터의 경우 부식 정도가 심해 화장실 물청소를 하면 녹물이 나온다”며 “수돗물도 역시 식수로 사용하기 힘들어 정수기를 설치했다”고 지적했다.
각 아파트 지하에 설치돼 있는 변압기가 오래돼 걱정된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그는 “50년된 변압기라 누전되면 화재 위험이 있어 주민들이 불안해한다”며 “여름에 에어컨을 틀면 얼마가지 않아 꺼지는 일도 많다”고 말했다.
30년 거주한 S씨는 “시범아파트를 왜 정치에 이용하는지 모르겠다”며 “공무원들이 안전불감증에 걸린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옆에 서있던 입주민 C씨 역시 “용적률을 높여달라는 게 아니다. 투기하려는 목적도 없다”며 “아파트 인근 상가는 여름이 되면 물이 새 엉망진창”이라고 토로했다. 이제형 여의도시범아파트 주택재건축정비사업위원회 위원장은 “재건축은 기본적으로 안전을 위한 것인데 주택시장이 불안하다는 이유만으로 위험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꼼짝도 못하고 살아야 한다는 건 말이 안된다”면서 서울시의 대안 마련을 촉구했다.
재건축 지연에 대한 불편함은 시범아파트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광장아파트에서 20년 거주한 O씨도 “깨끗한 환경에서 살고 싶은건 기본적인 욕구인데 시의 개입이 지나치다”며 “절차대로 재건축 인허가를 진행하면 되는데도 재건축을 늦추는 것은 재산권 침해로 밖에 안보인다”고 지적했다.
서울특별시 도시계획위원회 정재웅 시의원은 “마스터플랜을 이유로 재건축을 지연하더니 지금은 향후 대책에 대해서 얘기를 안해주고 있다”며 “안전사고가 가장 우려된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주민들의 정당한 권리 행사를 제한하는 행태가 지속될 경우 11월 예정된 행정사무감사에서 서울시의 행정을 바로잡기 위해 강도 높은 질타와 대책마련을 촉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