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아의 라온 우리말터] 추석맞이 목욕재계

입력 2018-09-20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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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은 참 징글맞게도 더웠다. 그래서일까, 어느 날 밤 갑자기 들이닥친 서늘한 바람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모처럼 밤하늘의 달을 보며 무더위에 지친 마음과 얼굴을 활짝 펴고 나니 추석이 눈앞이다. 시골 마을 마당엔 고추와 대추가 빨갛게 익어가고 장독대 항아리에선 노인들이 자식을 위해 빚은 술이 달디단 향을 내뿜어 마실 만하겠다. 이 넉넉함에 옛사람들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고 했을 것이다. ‘5월 농부 8월 신선’이라는 말도 실감이 난다.

추석은 우리 고유의 명절로 ‘중추절’, ‘한가위’라고도 한다. 중추(仲秋)는 음력 8월로 가을의 한가운데를 뜻한다. 초추는 음력 7월, 종추는 음력 9월이다. 추석의 순우리말인 한가위는 ‘한+가위’ 형태이다. 한은 ‘크다’, ‘많다’를, 가위는 ‘가운데’를 뜻하니 한가위는 ‘8월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의미이다. 가배(嘉俳), 가배일, 가윗날 등도 추석의 또 다른 이름이다.

어릴 땐 명절 전날이면 온 가족이 목욕탕에 가서 때를 밀었다. 집에 목욕탕이 없거니와 따뜻한 물도 나오지 않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엄마한테 등짝을 내주기 싫어(때 미는 세기가 고문에 가까웠다!) 이리저리 도망 다니다, 결국 등짝을 한 대 맞고 울던 때가 그리운 걸 보니 나이를 먹긴 먹었나 보다. 집집마다 목욕탕을 찾은 건 깨끗한 몸으로 조상을 모시겠다는 같은 이유였다. 이름하여 ‘명절맞이 목욕재계’이다.

우리 조상들은 제사를 지내는 등 신성(神聖)한 일을 할 때면 부정이 타지 않도록 늘 목욕을 해 몸을 깨끗이 하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명절 때는 물론 된장·고추장을 담그는 날에도 몸과 마음을 정돈했다. 술을 빚을 때 역시 몸을 깨끗이 한 후 새벽에 샘에 가서 가장 맑은 물을 떠다 썼다. 이 모든 행동을 뜻하는 말이 바로 ‘목욕재계(沐浴齋戒)’이다.

그런데 목욕재계를 ‘목욕재개’, ‘목욕제계’ 등으로 잘못 알고 쓰는 이들이 많다. ‘목욕재계’ 풍속이 사라진 탓이 크겠다. 무엇보다 삶의 순간순간에 정성을 기울이는 노력이 줄어든 것 같아 아쉽다. 재개는 “어떤 활동이나 회의 등을 한동안 중단했다가 다시 시작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목욕재개’는 목욕을 그만뒀다 다시 한다는 의미이므로 본래의 뜻에서 한참 벗어난다. ‘목욕제계’ 역시 제사(祭祀)를 생각해 쓴 것으로 보이나 바른 말이 아니다.

‘잿밥’과 ‘젯밥’도 많은 이들이 헷갈려 하는 말이다. “염불에는 마음이 없고 잿밥에만 마음이 있다”와 “제사보다 젯밥에 정신이 있다” 두 속담만 생각한다면 구분하는 데 그리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둘 다 정작 해야 할 일에는 정성을 쏟지 않고 자기의 잇속에만 매달린다는 뜻으로 쓰인다. 잿밥의 ‘재(齋)’는 불교에서 ‘죽은 이의 명복을 비는 법회’이다. 그러니 잿밥은 불공을 드릴 때 부처 앞에 놓는 밥이다. 이와 달리 젯밥은 ‘제(祭)+밥’의 형태로 ‘제삿밥’을 말한다. “염불에는 잿밥, 제사에는 젯밥”. 이렇게 정리하면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올해 한가위는 마냥 즐겁진 않다. 폭염, 태풍, 호우로 과일값과 채솟값이 오를 대로 올랐다. 수해를 입은 농가는 아직도 마음이 젖어 있을 터다. 일자리를 잃은 도시민들도 우울하긴 마찬가지다. 그래도 고향은 찾아야 한다. 고향에는 가장 크고 환한 달이 떠오르고, 어머니 아버지 형제자매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대를 두 팔 벌려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jsjy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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