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칭 진보 또는 보수주의자들에게 궁금한 게 하나 있다. 그들은 진보와 보수의 가치를 제대로 알고는 있을까 하는 점이다. 하기야 의원들조차도 선뜻 답을 못하는 어려운 질문이다. 아마도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을 지지하면 진보, 자유한국당을 밀면 보수라는 정도로 이해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 같다. 분배에 무게를 실으면 진보, 성장에 초점을 맞추면 보수로 본다. 친미는 보수, 자주노선은 진보라는 시각도 있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조각조각 모두 맞는 얘기다.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가치는 자유와 평등이다. 자유를 기본 가치로 추구하면 보수이고, 평등원리를 국정 기조의 기준으로 삼으면 진보다. 문재인 정부는 평등의 가치를 앞세운 진보 정권이다. 평등의 가치로 설명이 안 되는 정책이 거의 없다. 공정 경쟁을 앞세운 재벌 개혁과 특목고 폐지 등 교육 평준화, 선택적 복지가 아닌 보편적 복지, 고소득자만을 겨냥한 핀셋 과세 강화, 대기업의 법인세 인상을 포함한 증세 등은 모두 평등원리에서 출발한다. 사회 각 분야의 평등을 구현하기 위해선 정부의 개입 영역이 넓어질 수밖에 없다. 진보 정권서 큰 정부가 필연적인 이유다.
자유를 앞세운 보수의 핵심 기조는 경쟁을 통한 성장과 발전이다. 자유시장경제가 기본 토대다. 문 정부의 핵심 과제인 재벌 개혁과 증세, 교육 평준화 등에 반대하는 밑바탕엔 자유의 가치가 자리하고 있다. 자유로운 경쟁을 추구하는 만큼 정부가 시장에 개입할 여지가 적다. 자연스럽게 작은 정부로 귀결된다. 한국당의 실패는 보수를 외치면서도 보수의 가치를 구현하지 못한 때문이다.
진보와 보수의 소통 방식도 뚜렷하게 구분된다. 진보는 감성, 보수는 이성을 무기로 한다. 테이크 아웃 커피를 든 문재인 대통령의 청와대 정원 산책, 스티브 잡스 방식의 업무 보고는 대표적인 감성 터치다. 임기 초반 재미를 톡톡히 봤다. 보수는 무기인 실증적 논리 대신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다 대국민 소통에서 진보에 백전백패했다.
분단 상황에 따른 대북관계와 한미관계 접근 방식도 차별 포인트다. 대북관계는 대척점에 선 영역이다. 진보는 남북대화를 통한 평화 정착에 무게를 싣는 반면, 보수는 제재를 통한 해결을 강조한다. 보수 정권선 예외 없이 남북 간 대결 국면이 이어진 반면 네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이 모두 진보 정권서 이뤄진 배경이다.
한미관계도 시각차가 크다. 진보와 보수 모두 한미동맹을 강조하지만 온도차는 뚜렷하다. 보수에 한미동맹은 외교 정책의 알파요, 오메가다. 절대적이다. 진보엔 한미동맹이 중요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자주 노선’이 저변에 깔려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 직후 “사진 찍으러 미국에 갈 생각은 없다”고 말한 것에서 그 정서가 묻어난다.
이 같은 시각차는 정부 인사에 그대로 반영된다. 진보서 보수로 또는 보수서 진보로 정권이 넘어갈 때마다 외교 안보 정책의 기조가 흔들릴 정도로 대대적인 물갈이가 이뤄졌다. 진보 정부선 자주 노선을 앞세운 ‘자주파’가 한미동맹을 강조하는 ‘동맹파’를 누르고 득세한다. 거꾸로 보수 정권선 동맹파가 외교 안보 라인을 장악한다.
진보와 보수의 가치를 새삼 언급한 것은 정확한 이해를 통해 스스로 정체성을 점검해 봤으면 하는 생각에서다. 과연 자신의 생각과 가치가 일치하는지 짚어보자는 것이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 그 가치를 정책에 제대로 구현하는지도 따져볼 일이다. 그래야 낭비적이고 개념도 모호한 이념 대결서 벗어나 가치에 근거한 정책 대결로 갈 수 있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