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출신 변호사로 활동하다 경력 법관에 임용된 모 판사에게 "이번 직업은 좀 어떠냐"고 묻자 돌아온 답변이다. 피고인이 눈앞에서 법정 구속될 수 있는 형사 재판에서는 선고 전날 잠도 잘 못 자고, 선고 내내 입이 바싹 마르며 온몸이 바르르 떨리는 등 긴장은 더 심해진다고 했다.
법복을 입기 전 겪었던 숱한 경험들이 지금의 그를 만든 듯했다. 그는 피고인 편에서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패소했던 적도 있고, 피고인의 말을 100% 믿었다가 나중에 뒤통수 맞아본 경험도 있다. 이런 경험들이 모여 '언제든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선고를 두려워(?)하는 판사가 됐다고 했다. 법조 출입하며 들었던 이야기 중 가장 생경했다.
기자가 만난 대개의 법관은 언제든 틀릴 수 있다는 '오류 가능성'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았다. 모 판사는 "우리는 한번 내린 판단은 잘 바꾸지 않는다. 한 번도 틀려본 적 없는 사람들이라 스스로 틀렸다는 걸 인정하지 못한다"라고 말했고, 또 다른 판사는 "처음에 A라고 판단 내리고 나중에 B라고 판단을 뒤집으면 틀렸다는 걸 인정했기 때문에 용기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결국 일관성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만큼 법관 스스로 내린 판단에 자신 있어야 하고 또 실제로 자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법관의 판단은 절대적으로 존중되어야 한다는 말로 비치기도 한다. 이런 사고의 연장선에 '사법부 독립'이 있다. 사법부는 정의와 인권의 최후의 보루인 만큼 그 어떤 것도 개입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사법부의 독립성과 공정성은 심히 흔들리고 있다. '농단'이라는 말 앞에 사법이라는 단어가 붙을 줄 누가 상상이라도 했을까.
한 번도 틀려본 적 없다던 사람들이 이번엔 제대로 틀렸다. 생경한 이 경험이 법원에 무엇으로 남게 될까. 법원은 지금 그 갈림길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