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파트 단지 내 시설명이 영어로만 표기돼 입주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파트가 고급스럽고 세련된 이미지를 주기 위해 영어를 쓰는 것이 도가 지나쳐 생활에 지장까지 준다는 지적이다.
27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따르면 부산 ‘대연롯데캐슬레전드’ 단지 내 영어 사용이 네티즌들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21일 트위터를 사용하는 한 네티즌은 엄마가 새로 이사 간 아파트에서 관리사무소를 찾지 못해 불편을 겪었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올렸다.
이 게시물에 함께 첨부된 사진에는 관리사무소가 ‘MANAGEMENT OFFICE’, 경로당이 ‘SENIOR CLUB’, 도서관이 ‘LIBRARY’로 표기돼 있다. 또 아파트 편의시설이 모인 건물은 ‘CASTILIAN CENTER’로 간판을 걸고 있다. ‘CASTILIAN’은 롯데캐슬에 사는 사람을 칭하는 조어다.
한글 설명 없이 영어로만 단지 시설명이 표기돼 있어 영어에 익숙지 못한 노년층은 제대로 시설을 찾아가지 못하는 등 불편을 겪는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를 제기한 네티즌은 “104동 주차장에 주차하고 관리사무소에 가려면 104동 ‘P8’에 주차하고 ‘CALSTILAN CENTER MANAGEMENT OFFICE’를 단번에 알아보고 일을 처리할 수 있겠냐”고 지적했다. 이 게시글은 SNS에서 만 번 이상 공유되고 각종 커뮤니티에 퍼져나가 호응을 얻고 있다.
기자의 확인 결과 롯데캐슬의 단지 시설 영어 표기는 대연롯데캐슬레전드만의 얘기는 아니었다. 이달 29일 입주를 시작하는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롯데캐슬 노블레스’ 역시 어린이집은 ‘KIDS ROOM’, 입주민 휴게소는 ‘TEA PLACE’ 등 영어로만 표기돼 있었다.
아파트 단지의 영어 남발은 롯데캐슬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지적이다. 실제 다른 신축 단지들도 영어로만 시설 전부를 표기하는 경우는 잘 없으나 경로당을 ‘시니어스클럽’으로 음독해서 한글로 표기하거나 편의시설을 ‘Community Center’로 적는 등 영어 사용이 많다.
단지 이름 자체도 영어 사용을 남발하고 있다는 지적이 예전부터 제기돼 왔다. 실제 시공능력 평가 상위 10위 권에 드는 건설사들 고급 아파트 브랜드를 전부 영어로 사용하고 있다. 실제 대림산업은 일반 브랜드는 ‘e편한세상’, 고급 브랜드는 ‘아크로(Acro)’를 사용한다. 대우건설은 ‘푸르다’와 공간을 뜻하는 ‘Geo’를 합성한 ‘푸르지오’를 일반 브랜드로 두고 고급임을 강조할 경우 ‘써밋(Summit)’을 붙인다.
더 좋은 영어 단어를 찾기 위해 경쟁을 벌이다 보니 문법 파괴까지 발생한단 지적이다. 서울 서초의 ‘반포주공 1단지 1·2·4주구’를 재건축한 ‘디에이치 클래스트(THE H Class+est)’는 최상급의 클래스라는 뜻을 담았으나 형용사에만 붙일 수 있는 접미사 ‘-est’를 명사 ‘class’에 붙여 어법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았다.
대형건설사의 한 관계자는 “한글보다 영어가 세련됐다는 사회적인 인식이 있어 꼭 건설업계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영어가 차용된다”며 “정비사업을 벌일 경우에도 조합 측에서 영어 사용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