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CNN머니와 벤처비트 등 외신들은 망 중립성 폐지의 의미와 영향을 비중 있게 다뤘다. 망 중립성이란 통신망을 보유하지 않은 사용자라도 같은 조건으로 망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 원칙에 따라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들은 인터넷 속도를 앱에 따라 높이거나 줄일 수 있는 권한을 갖거나 넷플릭스 등 인터넷 트래픽을 많이 쓰는 동영상 공유 업체에 더 많은 돈을 내라고 할 수 없었다. 동영상 공유업체 비메오의 마이클 체아 법률자문은 “망 중립성의 핵심은 인터넷 제공업체들이 아닌 소비자가 앱의 승자와 패자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컴캐스트와 버라이즌, AT&T 등 미국의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들은 망을 구축하는데 자금을 들인 만큼 사적 재산권을 인정해달라며 망 중립성 원칙 종료를 요구해왔다. 그 결과 미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지난해 12월 망 중립성 원칙 폐기 여부를 표결에 부쳐 통과시켰고, 6개월의 유예 기간을 거쳐 이날부터 망 중립성이 폐지됐다. 아짓 파이 FCC 위원장은 “미 연방거래위원회(FTC)가 공정한 인터넷 환경을 관리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소비자단체는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열린 인터넷 사용을 위한 소비자 공익단체인 퍼블릭놀리지의 크리스 루이스 부회장은 “FCC와 FTC는 인터넷 제공업체가 대중을 속일 때만 행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인터넷 제공업체들은 소비자들에게 알리기만 한다면 마음대로 인터넷 속도를 제한하거나 막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망 중립성 원칙이 폐기됐다고 해서 소비자들의 인터넷이 갑자기 느려지거나 먹통이 될 일은 없다. 그러나 미국의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들이 막강한 권한을 가지게 된 것만은 사실이다. 예를 들어 컴캐스트가 2015년에 출시한 TV 스트리밍 서비스인 스트림TV는 트래픽 조절 권한을 등에 업고 소니나 디시네트워크의 서비스보다 우위에 설 수 있게 됐다. 만약 컴캐스트가 스트리밍 TV 사업자들에게 돈을 더 내라고 요구하면, 그 부담은 소비자에게도 옮겨진다. 더 나아가 버라이즌이 비용을 내지 않는 웹사이트와 앱을 차단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 만큼 비용을 더 내지 않는 사업자는 아예 인터넷 사용이 차단될 수도 있다. 인터넷 제공업체들은 사용자 맞춤형 광고를 내보내기 위해 개인정보와 구매내용 등 추가적인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트래픽에 민감한 페이스북과 구글 등 IT 업체들은 불리한 입장이다. 인터넷 제공업체가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나 스트리밍 서비스, 검색엔진을 유료화하며 더 빠른 인터넷 속도를 위해 요금을 올리겠다고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기존 사업자들과 경쟁할 자금이 없는 스타트업들은 막대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미국 전역에서는 망 중립성 원칙을 부활시키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지만,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미 상원은 지난달 초 망 중립성 유지를 위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공화당이 주도하고 있는 하원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상원의 결정을 지지하지 않아 실제 입안은 불투명하다. 워싱턴, 오리건 등 일부 주 정부는 망 중립성을 유지하기 위한 법안을 통과시켰으나 FCC는 주 정부가 자체적으로 망 중립성 법을 채택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