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현지시간) 가디언에 따르면 아일랜드 선거관리위원회는 현행 헌법에서 지난 25일 치러진 국민투표 결과 낙태를 허용하자는 찬성표가 66.4%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전체 투표율은 66.4%였다. 이에 낙태 금지를 명시한 수정헌법 제8조는 폐지된다.
사이먼 해리스 아일랜드 보건장관은 관련법을 개정하고자 오는 29일 내각과 논의 절차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개정되는 법은 임신 12주 이내인 여성이 원할 경우, 12∼24주 사이에는 임산부의 건강이 위협받는 경우 등 의사와 협의 뒤 중절 수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해리스 장관은 국민투표 결과 발표 직후 “수정헌법 8조 때문에 아일랜드 여성은 낙태 수술을 위해 비행기나 배를 타고 다른 나라로 가야 했다”며 “이제 손을 잡고 나아가자”고 말했다. 낙태죄 폐지 운동단체인 ‘투게더 포 예스(Together for Yes)’의 올라 오코노 대표는 “아일랜드 여성들에게 기념비적인 날”이라며 “국민투표 결과는 여성을 2등 시민으로 취급한 아일랜드 법에 대한 거부”라고 밝혔다.
전통적인 가톨릭 국가인 아일랜드가 낙태 금지 헌법 조항을 폐지한 데 대해 세계 각국은 주목하고 있다. 다만 아일랜드가 갑작스러운 선택을 한 것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USA투데이에 따르면 더블린대학의 메리 맥울리프 사회학 교수는 “2016년 마지막 인구 조사에서 아일랜드 국민의 약 80%는 자신을 카톨릭 신자라고 밝혔다”며 “그러나 종교가 낙태, 동성결혼 등 개인의 삶을 결정하는 선택에 많은 역할을 하는 일은 드물다”고 말했다. 그는 “낙태 찬반 투표는 아일랜드에서 벌어지는 많은 자유화 중 하나”라며 “우리 사회는 실제로 진보적”이라고 설명했다. 맥울리프 교수는 “페이스북, 구글 같은 미국의 IT 업체들이 아일랜드에 유럽 본사를 갖고 있다”며 “그것은 아일랜드가 그 어떤 나라보다 현대적인 곳이라는 증거”라고 덧붙였다.
더블린 트리니티대학의 오란 도일 법학과 교수는 “국민투표 결과를 보면 왜 더 빨리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는지 의문이 든다”고 밝혔다. 그는 “분명히 가톨릭교회에서는 중절 수술을 반대했다”며 “그러나 대부분의 가톨릭교회는 1990년대 아일랜드 성직자와 관련한 성적 학대 스캔들 이후 아일랜드 국민에 대한 도덕적인 권한을 상실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어 “압도적으로 낙태 찬성표가 나오면서 아일랜드 정계는 상황을 완전히 오판한 셈이 된 것”이라며 “아일랜드 시민들의 사고방식이 이 나라의 법보다 훨씬 앞서갔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