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진 대기자의 현안진단』
재건축·재개발사업 향방은 일반 주택시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 특히 재건축은 시장 흐름을 주도할 정도로 파급력이 대단하다.
그동안 서울 강남권 아파트 가격이 급등한 것은 곳곳에 재건축이 성행했기 때문이다. 재건축 대상 아파트값이 크게 오른 것도 이유지만 그것보다 철거 때 지급되는 이주비 위력이 엄청났다.
이주비가 너무 많이 풀려 주변 집값을 끌어올려서 그렇다는 말이다.
한동안 건설업체는 재건축·재개발 사업 수주를 위해 조합원들에게 온갖 혜택을 제시했다. 누가 더 많은 시혜를 베푸느냐에 따라 시공권 향방이 결정됐을 정도였다.
이 중에서 이주비 액수가 공사 수주의 주요 관건이었다. 건설업체 입장에서는 어떻게 하든 이주비를 늘리려 했다. 이자가 없는 무이자 이주비까지 제시됐다. 이주비는 건설사 보증과 해당 부동산 담보로 대출을 받아 조달됐다. 무이자 이주비 부문의 금리는 건설사가 부담했다. 다 공사비에 포함시켰지만 말이다.
이주비 지급이 풍성하다 보니 전세를 놓았던 조합원은 세입자 보증금을 내주고도 돈이 남아 다른 곳에 투자를 하는 일도 벌어졌다. 직접 거주했더라도 인근 넓은 아파트에 전세를 들 수 있었다.
그래서 철거 수요가 쏟아져 나오면 주변 전세 가격은 급등하곤 했다. 전세를 구하겠다는 사람이 줄을 섰으니 가격이 치솟는 것은 당연했다.
전셋값이 뛰면 매매가도 덩달아 오른다. 이런 시장 구조 때문에 그동안 전국 주요 지역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정부가 이주비를 통제하고 있어서다. 너무 많은 이주비를 지급하는 건설업체는 불이익을 받는 상황이다.
게다가 대출 억제로 예전만큼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가 없다. 규제 전에는 재건축·재개발 대상 자산의 70%까지 대출이 가능했으나 지금은 2주택자 이상은 30%로 축소됐다. 1가구 1주택자라도 40%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 정도의 이주비로는 인근에 전세를 구하기 어렵다. 전세를 줬던 기존 집 보증금 반환도 버겁다는 소리도 들린다.
이는 철거 수요가 주변 집값을 밀어 올릴 수 없게 됐다는 얘기다. 이주비가 적어 싼 전셋집을 찾아 나서야 할 판이어서 인근의 전세시장에는 별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뜻이다. 물론 자금 여유가 있거나 개인 사정 상 주변에 거주해야 하는 수요도 있겠지만 이주비가 풍족했던 때만큼 많지 않다.
사례를 보자. 오는 7월 이주를 시작하는 신반포 3차·경남·한신23차 통합 재건축 단지의 경우 전용면적 73㎡ 형의 이주비는 4억 8000만 원, 97㎡ 형은 6억 원으로 책정된 반면 일대 아파트 전셋값은 85㎡ 이하 중소형은 8억~15억 원에 달한다. 이주비로는 주변 아파트로의 이주가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조합 측은 전세금 대출까지 알선해주는 처지다.
이주 중인 강남 개포 주공 1단지도 조합원당 이주비가 2억~3억 6000만 원에 불과하다. 예전의 7억~8억 원 수준의 절반도 안 된다.
이 정도의 자금으로는 전셋집 구하기가 쉽지 않다. 전세자금 대출을 받으려 해도 이자 부담이 걱정된다.
이는 이주비에 맞춰 싼 전셋집을 찾아 좀 먼 곳으로 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지금까지 서초·강남구 철거 수요 이전 지역은 같은 권역이 가장 많았고 그다음은 송파·성동·용산구 순이었다. 중대형 평수가 많은 단지일수록 그렇다. 이주비가 풍성한 데다 주민들도 다른 곳으로 이주를 꺼리는 분위기였다.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됐다. 자기 돈을 더 보태면 몰라도 이주비로는 주변 전세가격 감당이 힘들다.
이는 강남권 이주 수요가 자체 지역 주택 가격을 끌어올릴 수 없는 구조가 됐다는 뜻이다.
오히려 전세가격이 상대적으로 싼 위례ㆍ미사 등 외곽지역이 혜택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올해 하반기 강남·서초·송파권에서 생기는 재건축 이주 수요는 1만 8000여 가구에 이른다. 개포 1단지, 신반포3차·경남·신반포23차 통합단지, 신천 미성·클로바, 반포 한신4지구, 반포 주공 1단지, 신천 진주 등이 주요 단지다. 재개발사업으로 방배13구역이 포함돼 있다.
앞으로 이들 철거 수요가 어디로 이주하느냐에 따라 관련 지역 주택시장 운명이 달라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