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파리기후협약 탈퇴를 선언하며 ‘미국 우선주의’를 주장했다. 그러나 최근까지 이어진 일방적 결정들로 갈등이 야기되는 모습은 ‘미국 단독주의’에 가깝다고 FT는 설명한다. 미국은 중국뿐만 아니라 전통적 우방국인 일본, 캐나다와 유럽연합(EU)에도 관세를 부과하며 세계 무역 체제를 흔드는 등 편을 가르지 않고 공격을 가했다.
동맹국마저 위협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뒤에는 세계 시장을 장악한 미국의 경제력이 있다. EU는 미국의 이란 핵협정 탈퇴에도 “합의를 지키겠다”고 선언했으며 이란과 협정을 이어갈 수 있을지 논의 중이다. 그러나 에어버스와 같은 유럽 기업이 미국과 이란 시장 중 한 곳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미국의 제재를 거스르기는 힘들다. 만약 유럽 기업이 극단적으로 이란에서 사업을 계속한다면 회사 임원들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체포될 가능성이 크다. 이란과 거래하는 유럽 은행은 미국에서 막대한 벌금을 부과받거나 금융 시스템이 제한된다. 전날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유럽 국가들이 이란과 거래한다면 미국의 제재에 부딪히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세계 기축통화로서 미국 달러화의 지위도 막강하다. 세계 금융 시스템은 달러화 중심으로 움직인다. 유럽과 중국, 러시아는 달러 이외의 통화를 사용하는 국제 지급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왔으나 아직 갈 길이 멀다. 유로화는 비교적 새로운 통화로 역사가 짧으며 중국 위안화는 달러화보다 안정성이 낮다. 루블화는 도전자 축에도 들지 못한다. 달러화가 아닌 통화를 사용하는 기업은 미국 시장에서 배제될 위험도 있다. 국제 시장에서 미국 달러화를 배제할 날은 아직 멀었다. FT는 미국이 군사력만큼이나 달러를 사용하여 동맹국과 적국을 제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영향력은 트럼프 대통령이 일방주의에 드는 비용이 거의 없다고 믿게 만든다. 미국의 동맹국들은 이란 핵협정이나 파리기후협약 탈퇴를 비판할 수 있으나 막상 할 수 있는 조치가 별로 없다. 일본이 대표적인 예다. 일본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탈퇴하고 철강 관세를 부과한 미국의 조치에 불만을 품고 있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회담을 앞둔 상황에서 미국의 경제적, 안보적 협력을 대체할 방안이 없다.
그러나 FT는 미국이 수십 년 동안 형성된 국제적인 제도와 규정의 네트워크를 벗어나기는 힘들다고 지적했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이나 중국의 남중국해 장악에 대응하려면 국제법에 호소하고 유엔과 다른 나라들의 지지를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국제 규범에 기반을 둔 명령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미국도 이러한 규범에 제약을 받는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할 것이라고 FT는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