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우의 지금여기] 청탁자 감추는 ‘공정 채용’은 없다

입력 2018-03-27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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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금융부 차장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

금융권 채용 시장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이 같은 취임 일성은 그저 공염불(空念佛)이지 싶다. 감독당국과 피감기관 수장들이 함께 채용비리 의혹에 휩싸이며 ‘금수저-흙수저 사회’의 실상을 단적으로 증명했다.

금융회사는 고용이 안정되고 고임금을 받는 터라, 청년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그러나 이미 힘 있는 자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한 사실을 모른 채 자신의 능력 부족을 한탄하며 낙담했을 것이다. 과연 이들에게 공정한 채용의 문은 열려 있을까.

최근 NH농협은행, IBK기업은행, Sh수협은행 등이 상반기 공개채용에 나섰다. 해당 은행들은 서류전형부터 블라인드 채용으로 진행하고 있다. 나름 외부기관과 외부인사를 서류심사부터 면접심사까지 전 과정에 투입하는 등 공정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장치를 마련했다고 자부하고 있다. 행여 직원 채용과 관련해 잡음이 일까 저마다 공정성을 담보로 한 안전장치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그러나 은행권 내부에선 채용비리와 관련해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최근 검찰 수사를 받던 KB국민은행 인사팀장이 전격 구속되자, ‘몸통’ 빼고 ‘깃털’만 처벌받는 채용비리 수사가 되풀이되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이들이 생각하는 검찰의 채용비리 수사는 ‘은행 실무선에서 청탁을 무시하면 없어진다’라는 납득하기 힘든 공식화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은행권은 갑(甲)의 횡포를 어쩔 수 없는 을(乙)의 입장에서 받아왔던 게 채용비리의 시작이라고 입을 모은다. 때문에 채용비리를 ‘관치금융의 맥락’으로 봐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사실 주인이 없는 은행의 행장과 임원들에게는 눈치를 봐야 할 ‘슈퍼갑’이 두 손으로 셀 수 없이 많다. 지주회장이나 행장을 언제라도 끌어내릴 수 있는 청와대와 금융당국은 물론이고, 정부 부처와 권력기관, 국회의원 등…. 그리고 은행에 수백억 원의 예금을 맡기는 지방자치단체와 대기업, 고액 자산가들까지 챙겨야 한다. 인사 때만 되면 사방에서 밀려오는 청탁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문제는 이들이 그림자만 있을 뿐 실체가 없다는 것. 앞서 금감원이 확인한 채용비리에 연루된 청탁자는 KEB하나은행 55명, KB국민은행 20명 안팎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이들 명단은 공개되지 않았다.

금감원도 이에 별다른 입장을 전달하지 않아 정치권 인사 청탁이 빠진 것 아니냐는 음모론마저 돌았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제기한 2016년 우리은행 채용비리 의혹에서 금감원 청탁이 2건 있었다. 동년 12월 검찰의 공공기관 채용비리 중간 조사 결과에는 국회의원과 지방의원 요청이 유독 많았다는 것은 어떻게 해석될까.

일각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부정한 채용을 청탁하거나 지시한 이를 처벌하기는 쉽지 않다. 부정 채용을 요구한 사람의 혐의를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몸통(청탁자)에는 손도 못 대고 꼬리(수행자)만 자르겠다는 식의 땜질 처방만 반복하겠다는 것인가.

채용비리는 청탁자가 수행자보다 높은 지위에서 내리는 요구나 지시 혹은 압력을 통해 은밀하게 이뤄진다. ‘청탁 전화, 단 한 통화에 모든 것을 잃는다’라는 사회적인 공감대 형성이 공정 사회의 첫 번째 요건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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