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의 제자가 작은 사무실을 냈다. 그의 동기들이 모여 개장식에 가면서 인사차 내게 들렀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그들끼리 잠시 “뭘 사 가지고 갈까?”를 의논하게 되었는데 의견 중에는 꽃, 벽걸이 사진 등 실용성보다는 장식성이 더 강한 물건들도 거론되었다.
듣고 있던 내가 무심코 거들었다. “그런 장식품보다는 상용 물품이 더 낫지 않을까?” 그랬더니 한 친구가 “교수님께서 작품을 하나 써 주시면 모를까 나머지는 어차피 다 사야 하니까, 상용이기는 마찬가지예요”라고 했다.
허허, 이 친구 말에 문제가 있나? 내가 말을 잘못 했나? 나는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물건이라는 뜻으로 ‘상용(常用 常:일상 상, 用:쓸 용)’이라는 말을 썼는데, 이 친구는 ‘장사할 상(商)’을 쓰는 ‘商用’이라는 단어로 받아들여 “어차피 상품이기는 마찬가지”라는 말을 한 것이다.
이 친구가 정말로 常用과 商用을 구별하지 못하고 한 말인지 아니면 ‘상용’이라는 발음만을 취하여 商用 상품이 아닌 유일 수제품(?)인 내 작품을 슬쩍 하나 강탈할(?) 생각으로 한 아재개그인지 빨리 판단이 서지 않았다. 한바탕 웃은 다음에 진의를 캐물었더니 이 친구가 하는 말이 가관이다. “원래는 常用과 商用을 구별하지 못해 한 말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우아하게 교수님 작품을 탐하는 아재개그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 있던 우리 모두 그 친구의 무식함에 대해 성토하며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그 친구는 학창 시절에도 그렇게 착한 모습으로 자신의 무모함과 당돌함과 무식함을 스스로 노출하고 다녔지만 누구도 그 친구를 미워하지 않았다. 늘 그 친구가 있어서 주변이 즐거웠다.
세상에는 그렇게 솔직함으로써 오히려 뱃속 편하게 사는 사람이 있다. 부러운 사람들이다. 그러나 “여보게! 이제는 자네도 50줄을 넘겼으니 常用과 商用 정도는 구분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네. 껄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