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일본에서 창업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을 때 선택하는 ‘플랜B’의 일종으로 여겨졌다. 위험에 대한 혐오 때문에 대기업이나 이름이 알려진 기업에 취업하는 편을 더 선호했다. 최근에는 정반대의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기업들은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데도 많은 젊은이가 창업을 시도하거나 신생기업에 뛰어들고 있다.
중고거래 앱 메루카리, 온라인 쇼핑 업체 라쿠텐 등 전자상거래와 인터넷 관련 업체들의 성공이 새로운 기업가들의 롤모델이자 멘토로 작용한 덕분이다. 테츠 나사지마 미슬토 최고운용책임자(CIO)는 “이들 스타트업의 성공 사례를 점차 더 많은 언론이 다루고 있다”면서 “덕분에 젊은이들이 창업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실패’라는 낙인도 줄어들고 있으며 상위권 대학의 많은 과학·공학도들이 현재 창업을 위해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임스 리니 500스타트업재팬 대표는 “젊은이들은 우버, 페이스북 등 혁신이 주도하는 세계에서 성장해 부모세대와 다르다”고 덧붙였다.
기존 기업에서 경험을 쌓은 능력 있는 창업자들도 늘어났다. 호길 도 라쿠텐벤처스 투자 매니저는 “전에는 명망 있는 배경을 가진 창업자를 만나기 힘들었다”면서 “이제는 창업자의 약 80%가 맥킨지나 보스턴컨설팅그룹 또는 골드만삭스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창업에 유입되는 자본도 늘었다. 일본벤처리서치에 따르면 2017년 비상장 스타트업이 조달한 자금은 약 2720억 엔(약 2조7570억 원)으로 2012년 640억 엔에서 급증했다. 벤처캐피털이 투자한 금액은 709억 엔으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2011년에는 12억 엔에 불과했다. 주요 자본 출처도 정부와 은행, 보험사 및 기업으로 탄탄하다. 이들이 자금의 80%를, 벤처캐피털이 20%를 투자한다. 리니 대표는 “이제 기업들은 10달러(약 1만 원)에서 7000만 달러, 1억 달러까지도 어디에서든 얻을 수 있는 탄탄한 기반이 있다”고 말했다. 덕분에 자금 조달을 위해 상장을 서두르지 않아도 되며 수익을 창출하느라 성장을 저해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 조성됐다.
그러나 아직 일본의 벤처 투자액은 미국이나 중국, 유럽은 물론이고 동남아시아에 비해서도 현저히 적은 수준이다. 동남아 차량공유서비스 업체 그랩은 지난해 7월 한 번에 약 25억 달러를 조달했다.
언어 장벽으로 인해 외국 기업이 일본에 진출하기 어렵다는 점은 일본 스타트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요인이다. 일본 고객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며 차별화 전략을 꾀할 수 있다. 게다가 일본 경제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크기 때문에 자국 내 시장에 집중해도 성장 가능성이 충분하다. 다만 문화 및 언어의 장벽이 반대로 일본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가로막는 단점이 있다고 리니 대표는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