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품중단에 파업... 산업현장 위기감 고조

입력 2008-03-19 18:14 수정 2008-03-21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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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 춘투와 맞물려 경제 악영향 우려

"웃돈을 주고 간신히 구입한 철근을 레미콘 파업으로 인해 쓰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상황이 계속된다면 곧 조업을 중단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겨울철 비수기를 끝내고 우렁찬 건설장비의 굉음이 울려퍼져야 할 봄철 건설산업현장에 비명 소리가 끊이질 않고 있다.

국제적인 원자재 가격상승과 환율 급등, 유가 상승 등의 악재가 잇따르고 국내에서는 주물, 아스콘, 레미콘 등 각종 건설사업 원재료 공급 업체들이 잇달아 납품을 중단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물업계는 19일로 3일째 대기업 납품을 중단하고 있다. 또 주물업체들이 모여 있는 대구경북 지역의 주물사업협동조합은 대표자 회의를 열어 자동차부품업체 등에 대해 무기한 납품 중단을 의결하기까지 했다.

조합 측은 "대부분 업종에서 단가 협상이 타결되거나 마무리 단계이나 자동차 분야는 주물제품 원재료에 대해 평균 20% 가격 인상을 결정한 현대차를 제외한 나머지 대기업들이 무반응이라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지난 10년간 원료인 고철과 선철 값은 각각 190%, 120%가 올랐지만 주물제품 납품가격은 20~30% 밖에 오르지 않아 원가 절감과 생산성 향상만으로 수지 타산을 맞출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대기업에 납품하고 있는 A 주물업체 관계자는 “차라리 공장 운영을 중단하는 것이 나은 상황”이라며 “허리띠를 졸라맨다고 해결될 게 아니다”며 절박함을 호소했다.

문제는 이같은 상황이 주물업계 뿐아니라 다른 업계로까지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플라스틱 가공업계와 아스콘 업계, 레미콘 업계가 납품 중단 등 집단행동에 가세하면서 산업현장의 고민은 커져만 가고 있다.

한국아스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는 18일 오후 2시 정부대전청사 앞에서 회원사 임직원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집회를 갖고 조달청과 중소기업청에 납품단가 인상 및 아스콘제품 시장범위 제한 완화 등을 요구했다.

조합은 "아스콘의 원료인 아스팔트 값이 지난해 2월 ㎏당 260원에서 현재 460원으로 배 가까이 뛰었다”며 “현재 4만4000원인 조달청 가격을 최소 1만2000원 이상 인상하지 않으면 생산이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원자재 가격 인상분의 관급 계약가격 반영과 예정가격 산정방법의 전환 등도 주장하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조달청과의 계약 해지 및 미납 물량 반납과 함께 다음달부터 생산 중단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19일에는 전국의 670여개 레미콘 회사들이 파업에 돌입했다.

이로 인해 아파트 등 일부 건축 공사 현장에는 비상이 걸렸다. 대형 건설사들의 경우 예고된 파업인만큼 콘크리트 타설량을 늘리거나 대체공정으로 전환하는 등의 방법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미처 대처를 못한 업체들은 공사 중단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 건축의 필수자재인데다 다른 원자재와 달리 재고를 확보해 놓을 수 없는 레미콘의 특성상 공급부족이 곧 공사 차질로 이어질 전망이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레미콘 파업이 일주일만 계속되면 공사 지연에 따른 피해가 큰 현장에서도 나타날 것"이라며 "경제적 손실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레미콘 업체와 건설회사가 빨리 타협점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건설업계를 대표하는 '대한건설자재직협의회(이하 건자회)'는 레미콘 업체들이 파업을 풀지 않을 경우 가격 협상에 임할 수 없다는 강경 입장을 되풀이 하고 있다. 레미콘 업계도 협상의 전제조건인 ‘우선 생산 재개’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건자회 측은 레미콘 업체들이 주장하는 ㎥당 12.5% 인상은 지나친 것이라고 결론 짓고 ㎥당 3~4% 인상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염색가공업계 역시 아직은 집단행동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납품단가 인상을 위해 단체행동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프라스틱조합연합회와 콘크리트조합연합회 역시 집단행동을 검토 중이다.

◆악화 지속될 땐 국내 경제 악영향

이같은 산업계의 갈등이 지속된다면 이미 국제 원자재값 급등에 따른 경영난이 업계 전반의 현실이 되어가는 상황에서 이달 말부터 예고된 노동계의 임금단체협상 및 춘투 돌입과 맞물려 국내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1일 코스콤 비정규직 농성장 강제철거로 가시화된 정부의 강경 드라이브와 친기업정책에 민노총 등 노동계는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이미 민노총 산하 최대 산별노조인 전국금속노조가 정부가 중앙교섭에 응하지 않을 경우 4월 단체행동에 나설 것을 선언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관계자는 "정부와 재계가 노동자들과 공생하겠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어느 때보다 노동자들의 체감 고통이 큰 이 시점의 춘투는 생존권 사수투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LG전자 코오롱 등 10여개 대기업이 무분규로 임단협을 타결하고 유화노조, 항공노조 등이 임금 동결을 선언하는 등 산업계에 고통 분담과 위기 타개 차원의 노사 화합 및 상생의 분위기가 퍼져가는 것은 긍정적이라는 평가다.

이와 관련해 한 대기업 관계자는 "국내외적으로 경제여건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노사 상생의 기조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고 강조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는 "원가상승 요인이 분명히 존재하는 만큼 대기업들이 갑의 위치가 아닌 동반자적 입장에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소기업들 역시 원가상승에 따른 고통은 기업 규모와 상관없는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대승적 차원에서 하루빨리 사태를 해결, 산업현장을 원상복구하는 데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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