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의 작은 마을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 연차 총회(다보스 포럼)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포럼의 뜨거운 감자는 도널드 트럼프와 보호무역주의. 그러나 이것 말고도 핫한 주제가 있다. 바로 혹독한 날씨다.
다보스는 스위스 동부에 있는 인구 약 1만1000명이 사는 마을이다. 우리나라 세종시 인구의 30분의 1 수준. 해발 1500m의 산악 리조트는 겨울이면 스키, 여름이면 피서를 위해 유럽 각국에서 온 인파로 북적이지만 평상시에는 평온하다. 그러다가 1월 다보스 포럼이 시작되면 마을 분위기는 확 달라진다. 세계 정상급 인사들과 글로벌 기업 및 국제기구 수장, 문화인들, 시민단체 대표들이 이곳으로 몰려들기 때문이다. 수행원과 취재진까지 합하면 마을 인구의 2배인 2만 명 이상이 몰린다. 현지 호텔들은 회의가 열리기 6개월 전, 혹은 1년 전부터 예약이 꽉 찬다.
올해 다보스 포럼에는 예기치 못한 사태로 비상이 걸렸다. 연중 최대 행사를 앞두고 전례없는 추위에다 기록적인 폭설로 교통 혼잡이 심각하기 때문.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스위스 다보스에는 최근 1주일 새 159cm의 눈이 내렸다. 이는 20년 만의 최대 강설량이다. 지역 당국은 강설이 “전례없는 일”이라며 인근 지역의 눈 사태 위험 레벨을 5로 격상시켰다. 15년간 다보스 포럼에 참석했다는 엘레나 카메노프 씨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취리히에서 오면서부터 봤는데 도로 제설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며 “스위스 사람들은 눈이 내리는데 익숙해서 그런 것 같은데 말도 안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전례 없는 폭설로 참석자들의 지각 사태도 잇따랐다. 포럼 참석자들은 보통 개막 하루 전날이나 자신의 연설 일정이 있는 전날쯤에 다보스를 찾는다. 행사장에 온 한 이코노미스트는 12km 오는데 2시간이 걸렸다고 AFP통신에 말했다. 교통 체증이 없다면 길어야 20~30분 걸리는 거리다. 제네바에서 왔다는 니혼게이자이신문 기자는 21일 기차로 오던 중 선로에 쌓인 눈이 치워지지 않아 기차가 중간 역에 정차해 버스로 갈아타고 겨우 행사장에 도착했다고 전했다. 심지어 일부 인사는 지각 사태를 피하기 위해 헬리콥터를 이용하기도 했다.
행사가 시작된 후에도 교통 혼란은 계속되고 있다. 참석자들은 평소 같으면 전용 리무진이나 특별 셔틀차량을 이용하는데, 지각 사태를 피하고자 기차를 타는 사람이 많았고, 다보스 중심부에서는 빙판길로 교통 정체가 빚어지다보니 걸어다니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 때문에 내로라 하는 글로벌 기업 수장들도 빙판길에서 넘어지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이런 상황에서도 다보스는 환경 보호를 위해 도로에 염화칼슘을 뿌리지 않는다고 한다. 이에 다보스 포럼 주최 측은 참석자들에게 신발에 착용하는 플라스틱 스파이크를 지급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주최 측이 긴장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트럼프다. 트럼프 대통령은 26일 폐막 연설을 위해 25일 다보스에 오는데, 그때까지 교통이 원활하지 않으면 어떤 책을 잡힐지 모르기 때문이다. WEF 연차총회 장소를 다보스로 선정한 건, 세계적인 현안을 해결하는데 최적의 장소라고 판단해서였는데, 다른 곳으로 바꾸자고 나오면 여러 모로 골치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 오는 행사인 만큼 올해 경비는 사상 최고 수준이다. 작년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참석했을 때 스위스는 4000명 이상의 군사를 배치, 900만 달러(약 96억 원)를 보안 비용에 쏟아부었다. 스위스 언론들은 올해 경비는 지난해 수준을 초과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