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미국 채권국인 중국이 미 국채 매입 규모를 줄이거나 중단을 고려한다는 소식에 금융시장이 출렁였다.
블룸버그통신은 10일(현지시간) 중국 외환보유고 관리 당국자들이 정부에 미 국채 매입 속도를 늦추거나 중단하는 방안을 권고했다고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들 당국자는 미 국채가 다른 자산에 비해 점점 매력이 떨어지고 있고, 주요 2개국(G2·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 긴장이 고조되는 것도 미 국채 매입을 줄이거나 중단해야 하는 이유로 보고 있다고 통신은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보호무역주의를 펼치면서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등 압박을 가하자 중국 측이 맞불을 놓으려는 모습이다.
중국이 실제로 행동에 들어가면 수급에 큰 영향을 미쳐 미 국채 매도세가 더욱 가속화할 수 있다. 미국 재무부 통계에 따르면 중국이 보유한 미 국채 규모는 지난해 10월 말 기준 1조1892억 달러(약 1272조4440억 원)에 달한다. 일본이 1조939억 달러로 중국의 뒤를 잇고 있다.
미국 CNBC방송은 투자자들이 중국의 위협을 트럼프 정부에 대한 정치적 메시지로 간주하고 있으나 여전히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외환보유고는 3조1000억 달러로 세계 최대를 자랑하며 정기적으로 운용 방침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방침에 대해 말이 새어나가는 것은 극히 드물다. 미국 정부는 이달 말 중국산 철강과 알루미늄이 자국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하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순간을 앞두고 있다.
제프리스 투자전략가들은 이날 보고서에서 “중국이 미국채 매입을 중단하면 금융시장이 고통받을 수 있다”며 “미국 정부의 자금수요는 특히 올해 뚜렷하게 커질 것이다. 이에 재무부는 최대한 많은 수요처를 찾고 있다”고 지적했다. 마이클 샤울 마켓필드자산운용 최고책임자(CEO)는 “중국이 미국 채권시장의 유동성 제거에 기여할 수 있다”며 “이는 이미 압박을 받고 있는 채권시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NAFTA) 탈퇴를 선언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온 가운데 중국발 악재까지 겹치면서 투자자들의 불안을 고조시켰다. 뉴욕증시 S&P500지수는 전일보다 0.11%, 나스닥지수는 0.14% 각각 떨어졌다. 두 지수가 하락한 것은 새해 들어 처음이다. 다우지수도 0.07% 밀렸다.
미국 달러화 가치도 약세를 보였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ICE달러인덱스도 0.2% 하락했다. 유로화 대비 달러화 가치는 0.5% 낮은 1.1995달러를 기록했다. 달러·엔 환율은 111.27엔까지 떨어져 지난해 11월 하순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다.
특히 채권시장은 이미 강한 압박을 받는 상황이어서 중국발 악재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했다. 미국채 10년물 금리는 장중 한때 2.58%까지 올라 지난해 3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채권 금리와 가격은 반대로 움직인다.
‘채권왕’으로 불리는 채권시장의 거물들이 잇따라 미 국채 시장의 약세장 진입을 선언했다. 빌 그로스 야누스핸더슨 펀드매니저는 전날 트위터에 “미국 채권시장의 약세장 진입은 확실해졌다”며 “5년과 10년 만기 미국채 금리가 25년 장기 추세선을 뚫고 올라갔다”고 밝혔다. 그로스의 경쟁자로 꼽히는 제프리 군드라흐 더블라인캐피털 설립자는 “미 국채 10년물 금리가 지난해 고점인 2.63%를 넘어서면 3.25%까지 치솟을 수 있다”며 “글로벌 중앙은행의 정책이 양적 긴축의 시대로 전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지난해 세 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보유자산 축소에 나서는 등 긴축 행보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은행(BOJ)은 지난 8일 장기국채 매입 규모를 전격적으로 축소해 올해 경기부양 모드에서 긴축으로 돌아서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불러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