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결권 대리행사 제도인 ‘섀도보팅(Shadow Voting·그림자투표)제도’가 올해 12월 31일을 기점으로 폐지된다. 시장 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금융당국의 철폐 의지를 꺾기엔 역부족이었다.
섀도보팅은 정족수 미달로 주주총회가 무산되지 않도록 1991년 도입된 제도로 지난 26년간 운영됐다. 주총에 참석하지 않은 주주 의결권을 증권예탁기관인 예탁결제원이 대신 행사해 ‘중립적 의결권 행사 제도’라고도 불린다.
상장회사들은 섀도보팅제도가 폐지되면 당장 내년부터 주주총회 결의에 차질을 빚게 돼 감사 선임 문제에 직면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족수 4분의 1을 만족시켜야 하는데 이게 만만치 않다. 특히 감사 선임 과정에서 대주주 의결권을 제한하는 ‘3% 룰’ 때문에 고민도 커졌다.
학계에서도 제도 폐지 방안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법무부 연구용역을 수행한 송옥렬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연말 섀도보팅제도가 폐지된다면 주식이 분산된 회사의 경우 주주총회 결의요건인 발행주식 총수 4분의 1 이상 요건을 충족시키는데 어려움이 예상된다”며 "상법 개정 시까지 한시적으로 현재 섀도보팅 유예 규정을 연장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금융당국도 할 말은 있다. 기업지배구조 투명성 제고와 소액주주 등 주주가치 제고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4년 7개월간 폐지를 유예한 바 있어 기업들이 더 노력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섀도보팅 관련 TF를 운영해 상장회사들의 어려움을 살피고 국내 주총 문화 활성화를 위해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상장회사는 뒤집기 한 판에 나섰지만 실패했다. 섀도보팅제도 폐지를 유예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11월 30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재논의될 방침이었지만, 결국 논의 안건에서 제외돼 협상 테이블에 올라오지도 못했다. 상장회사 쪽에서 제시한 대주주 의결권을 제한하는 3% 룰을 완화하는 상법 개정안도 제대로 된 논의과정을 거치지 못했다.
결국 섀도보팅제도는 애초 정부 방침대로 연말 일몰된다. 그러나 이를 둘러싼 갈등이 완전히 봉합되는 것은 아니다. 국회 정무위는 내년 2월 임시국회에서 섀도보팅의 한시적 운영 여부를 재논의할 예정이다. 금융위 섀도보팅 TF 활약상을 들여다보고, 섀도보팅 폐지에 따른 상장사들의 문제가 크다고 판단시 제도가 부활할 가능성도 존재한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