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들(의사나 병·의원 사람들, 약사들)이 대놓고 뭔가를 요구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제약사 영업맨들이 알아서 다해주니까요. 제약사 영업맨들은 기본급으로는 부족하고 판매실적에 따른 성과급이 곧 수입이라는 현실 때문에 이러한 영업을 할 수 밖에 없어요. 예로 간호사들에게 상품권 등을 제공해 친해지고 결정권을 가진 의사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파악하죠. 그리고는 각종 경조사 등을 챙기는 것을 비롯해 향응에 때로는 성상납도…."
국내 유수의 한 제약회사에서 영업이사로 활동하며 현재 자영업을 하고 있는 K모씨의 진술이다. 그는 우리나라 의약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라며 본지와 만남에서 이같이 말문을 열었다.
지난해 11월 동아제약, 유한양행, 한미약품, 녹십자, 중외제약 등 10개 제약사들이 병·의원에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돼 약 2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리베이트란 지불대금이나 이자의 일부 상당액을 지불인에게 되돌려주는 일 또는 그 돈을 말한다. 당시 공정위는 이들이 골프 접대, 세미나 지원, 회식비 지원 기타 등등의 명목으로 뿌린 금액이 약 5200억 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달 26일 서울경찰청은 엑스레이 등 촬영에 쓰이는 '조영제'를 납품받는 대가로 제약사들로부터 모두 수십억원어치의 금품과 향응을 받아 온 국내 유명 대학병원과 국공립병원 등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을 무더기로 적발했다. 경찰은 의사 355명과 방사선사 2명을 적발해 모 국립병원 이모 원장 등 의사 44명과 방사선사 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제약사들의 리베이트 영업 관행은 어제와 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에 적발된 일련의 사건들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문제는 제약사와 의사들 간의 리베이트 거래는 고스란히 약값으로 반영돼 소비자들에게 돌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내 제약사들은 매출액의 약 20%를 리베이트에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리베이트 비용이 크다보니 매출액에서 판매비용이 차지하는 비율도 35.2%로 일반 제조업 평균 12.2%의 세 배에 달하는 기형 형태를 보이고 있는 게 국내 제약업계 모습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제약시장 규모와 리베이트 비율 등을 감안할 때 불법 영업행위로 인한 의료 소비자들의 피해는 연간 2조2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러한 구조임에도 한국보건산업진흥연구원이 이달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20대 제약업체중 2006년도 영업이익율이 10%를 넘는 제약사들이 15개나 됐다. 엄청난 리베이트를 제공하고도 이같이 이익률이 뛰어난 것은 소비자들이 제약사의 불법 영업관행에 따른 비용을 떠안고 있기 때문이다.
본지는 제약업 먹이사슬과 관련된 이들로부터 리베이트 생생한 실상을 들어봤다.
우선 주로 리베이트가 이뤄질 수 밖에 없는 시장은 전문의약품 분야가 되고 있다.
K모씨는“일반의약품과 전문의약품중 의사의 선택이 절대적인 전문의약품의 분야가 리베이트에 취약하다. 실제로 오리지널과 복제약(카피약)의 제조단가는 차이가 많이 난다.”
우리나라 제약사들이 연간 연구개발(R&D)비용은 매출액의 5%를 전후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화이자로 대변되는 세계적 다국적 제약사들이 R&D투자로 매출의 10~15%를 지출하며 우리나라 돈으로 연간 수조원을 쏟아붓는 것에 비하면 비교가 되지 않는 수치다. 우리나라에는 제약사 수가 300개가 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지만 연 매출이 1조원을 넘는 곳은 단 한군데도 없는 상황이다.
다국적 제약사들이 일정기간 라이선스를 보장받는 오리지날약을 생산하는데 총력을 기울인다면 국내 제약사들은 투자비가 거의 들지 않는 카피약 생산에 나선다.
개인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J모씨는 "다국적 제약사들의 영업맨들은 차별화된 제품력을 부각하는 영업에 주력하는 데 반해 국내 제약사들은 제품력 외의 다른 부분으로 시장에 파고들려고 하는 모습이 역력하다"고 시사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투자비가 거의 들지 않는 카피약이 오리지널약의 80% 수준으로 보험수가가 정해지고 있다고 한다. 카피약 금액이 높이 책정되는 이유는 관행처럼 시행해온 리베이트가 약값으로 반영되고 있기 때문.
몇해전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청의 고위간부가 아들 결혼식때 제약회사의 임직원 등에게 청첩장을 돌려 거액의 축의금을 받아 처벌된 적이 있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는 식약청이 제약 생산원가 관리와 감독에 소홀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라는 설명이다.
K모씨는“식약청이 제약사로부터 정확한 생산원가를 제출받아 수가를 확실히 정하고 관리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적정한 수가가 정해지면 제약사들은 적정마진을 위해서 리베이트 관행을 줄일 수 밖에 없다"고 전했다.
또한 형식적으로 정해진 약품의 보험수가래도 공급하는 가격과 리베이트 규모도 천차만별이라는 것.
K모씨는 "보험수가 만원의 약품이 병원 규모에 따라 1000원에 공급되기도 한다. 일례로 약 80병동 규모의 중종합병원이 100만원이상 발주하면 현금 15%를 지원하고 있다. 또한 100만원이상 약품결제를 해도 추가로 10%의 할인을 해주는 식이다"고 말했다.
제약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공급되는 모든 약품을 풀셋팅 후 3~6개월이 지난 후에야 결제에 들어가는데 이역시 10%정도만 받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새로 개점한 약국에는 규모에 따라 냉장고 등 집기세트를 모두 증정할때도 있다는 것. 종합병원 근처의 약국 등은 제약사의 약품만을 쓴다는 조건으로 이면계약을 하면 소정금액을 무상융자로 지원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제약영업에 있어서는 결제 역시 어음으로 하는 관행이 팽배하다는 것도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해 말 제약사 영업사원에서 전직한 Y모씨는 "어음 결제 관행과 회사에서 몰아세우는 실적 압박으로 인해 영업사원들은 자신의 금액으로 돈을 메꿔넣을 때가 많다. 그리고는 돈을 결제를 못해올 때도 있다. 이로인해 영업사원 중에는 집까지 담보로 잡아가고 있는 사람도 더러 있다"고 털어놨다.
Y모씨는 얼마 전 논란이 됐던 성분명 처방 등 모든 것이 약사와 의사간에 리베이트에 따른 기싸움이라고 주장했다.
병원의 처방전은 약국서 보관한 자료를 통계해 리베이트도 차등지급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
지난 26일 적발된 대학병원과 종합병원 등은 제약사 영업맨들에게는 최고의 고난도 업무이자 일단 성사시에는 최고의 영예로 꼽히고 있다.
우선 병원의 체계가 갖춰진 만큼 기안(계획)서를 병원 약국장, 담담과장, 이사를 모두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각 단계마다 들어가는 기름칠은 물론 말할 것도 없다.
K모씨는 "대학병원과 같은 규모가 큰 종합병원의 경우 과별회식도 행해지는 데 이때도 봉은 물론 제약사다. 병원과장들에게도 분기별로 회식비가 따로 지급되며 뒷돈을 따로 챙겨줘야 한다"며 담당과장이 특정사의 약을 안 쓰면 그만이기 때문에 간을 내놓고 영업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