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로] 국립민속박물관 이전 재고를

입력 2017-11-17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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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형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10여 년 전 국제 심포지엄 참여차 서울을 방문한 스페인 사람을 안내한 적이 있다. 행사 종료 후 숙소에 바래다주고 나오려는데 그는 “너희 나라에는 모마가 없냐”고 물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갸우뚱거렸지만 이내 모마가 현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MoMA)의 약자임을 알아차린 후 우리나라를 얕잡아 보는 것 같아 언짢았다. 그가 갖고 있는 지도에서 찾아주겠다며 지도를 펼쳤다. 그런데 인천공항에서 얻은 것으로 보이는 서울 지도에는 정말 국립현대미술관이 없었다.

당시만 해도 서울관이 생기기 전이었으니 과천에 있는 현대미술관을 찾았어야 했는데, 서울 지도에 과천이 나오지 않은 터. 당황스러웠다. 지하철을 타고 과천에 있는 대공원역에서 하차하라고 말했지만, 지도에 나오지 않아 지도 맨 아래 사당동 즈음에서 지도를 뒤집어 뒤편 여백에 가상으로 지하철 노선을 연장해 하차할 역을 표시해주었다. 당황스러움은 진땀으로 변했다.

대공원역에서 다시 코끼리 열차를 갈아타야 한다고 말할 때는 이렇게 어려운 길을 그가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땀은 자조 섞인 속웃음으로 변했다. 2013년 서울관이 개관되었을 때 그 일이 생각 나 잠시 얼굴이 화끈거렸던 기억이 있다.

간혹 외국에 출장 갈 일이 있으면 시차 적응에 애쓰는 대신 숙소에 여장을 풀고 바로 그 도시에 있는 대표적인 현대미술관(MoMA)을 찾곤 한다. 샌프란시스코, 빈, 뉴욕, 스톡홀름 등 세계 유수의 현대미술관에서 백남준 작품을 만난 것은 큰 기쁨이었다.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설치된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는 거대한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한가운데 웅장하게 서 있다. 이런 거장의 대작이 우리의 현대미술관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른다. 그런데 지금도 과천관에 가려면 어지간히 큰맘을 먹지 않으면 힘들다. 현재 영국의 팝아트 작가 리처드 해밀턴(1922~2011) 전시회가 이곳에서 열리고 있는데 마음만 굴뚝이다.

새 정부는 2000년부터 이전이 논의되어 왔던 국립민속박물관을 전격적으로 세종시로 이전하기로 발표했다. 마치 박물관을 이전 대상 공기관의 하나쯤으로 인식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씁쓸하다.

서울 사람이 남산에 잘 가지 않듯 민속박물관에 가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러나 우리가 외국의 민속 및 역사박물관을 찾듯 민속박물관을 찾는 외국인은 많다. 인구가 급증하고 있는 세종시에 민속박물관이 필요하다면 가까운 국립공주박물관을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경복궁의 온전한 복원을 위해 이전해야 한다면 대체 부지로 용산 미군기지 이전 장소도 좋다. 이미 국립박물관이 인근에 있으니 박물관 부지로는 더없이 좋지 않을까.

내가 사는 곳은 주말이면 아파트 올라가는 길이 차량으로 꽉 찬다. 서대문 자연사박물관을 찾는 차량들이다. 미취학 아동들에게 거대한 공룡이 고개를 건물 밖으로 빼 내밀고 있는 자연사박물관은 어린아이들에게 성지(聖地)가 된 지 오래다. 주민 입장에서 차가 막혀도 엄마아빠를 따라 종종걸음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행복해진다.

‘박물관이 살아 있다’라는 미국 영화가 있다. 밤이면 박물관 안에 있는 역사적 인물들과 동물들이 살아서 활동한다는 내용인데, 시간과 공간이 응축돼 있는 박물관이야말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꿈과 상상력의 보고(寶庫)가 아닐 수 없다. 우리의 과거 모습을 재현해 보여주는 민속박물관은 외국 관광객뿐 아니라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더없이 좋은 호기심 천국이다.

이용자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국립민속박물관 이전 계획은 재고되어야 한다. 인적이 드문 과천 숲속에 국립현대미술관을 건립하였던 1980년대 공무원 식 발상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않은 것 같다. 박물관은 단순한 수장고(收藏庫)가 아니다. 살아 있는 박물관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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