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태평양 지역을 하나의 자유무역지대로 통합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의 협상 내용이 일체 공개되지 않으면서 깜깜이 협상이라는 비난이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기조는 이달 24∼28일 인천 송도에서 열리고 있는 ‘제20차 RCEP’ 협상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또한, 시민사회단체는 한국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서 미국에 양보했던 사안을 RCEP 협상에서 다른 나라에 요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25일 국회에서 열린 ‘RCEP 협정, 한미 FTA에 미치는 악순환’ 기자회견에서 남희섭 변리사(오픈넷 이사장)는 RCEP의 비밀주의에 대해서 지적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단기간에 워낙 많은 FTA를 추진하면서 협상 담당자도 협상을 따라가기 힘들 정도”라며 “법률과 같은 효력을 지니는 협정 체결 과정이 투명해야 한다”고 했다.
남 변리사는 “정부는 RCEP 협상 5년 동안 일반 국민과 이해당사자의 의견 청취는 형식적인 공청회 단 한 차례에 그쳤고, 기업의 의견을 청취한 것은 2013년부터 현재까지 30회 정도로 편향적으로 듣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 정부가 한미 FTA 이후 지적재산권, 투자 분야에서 한미 FTA를 다른 협정에도 적용하는 모델로 삼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날 미국 시민단체 ‘퍼블릭 시티즌’의 브루드 클릭 법률정책국장은 “RCEP 협상에 있어 한국은 미국 기업을 위해 한미 FTA의 기준들을 가져다가 추진해서는 안 된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하는 공정무역은 미국 의약품에 대해 더 높은 가격을 내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한미 FTA 재협상에 있어서 특히 미국이 꾀하고 있는 국경 간 데이터 전송, 생의학품의 배타적 독점, 환율 조작 등의 가능성에 문제의 초점을 맞추고 주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가연 오픈넷 변호사 역시 “한미 FTA 지적재산권 챕터에는 다수의 ‘트립스 플러스(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 조항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는 국제인권법상 정보문화향유권에 대한 중대한 제한으로 작용한다”며 “RCEP 협상에서 한국은 다른 협상국들에 똑같은 전철을 밟기를 강요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15건 52개국과 FTA가 발효됐으며 우리 정부는 한·중·일, RCEP, 에콰도르, 이스라엘 등과 FTA 협상을 진행 중이다.
아세안 10개국과 한국, 중국, 일본, 인도 등 6개국 등이 참여하는 RCEP는 역내 GDP가 23조8000억 달러로 미국이 탈퇴한 TPP-11(10조2000억 달러)의 2배 이상이고, 역내 교역 규모 9조6000억 달러, 인구 35억 명으로 그 영향이나 잠재력이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를 능가한다고 평가된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24일 개막식 기조연설에서 “RCEP가 조속히 타결되기 위해선 높은 수준을 지향해야 한다”며 “국가별 특성을 감안한 실용적 타결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