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생활이 시작될 즈음에 서예가 심천 한영구 선생께서 써주신 글이다. 특히 볼 견(見)자를 무릎 꿇은 사람의 모습으로 표현하기 위해 하룻밤을 꼬박 고심했다는 말씀이 지금까지도 가슴에 남아 있다. 글의 출처는 한비자라 하는데, 큰 회사의 경영자로서 마음 깊이 새기고 실천하고자 노력해 왔다.
회사를 그만두고 지난 7월에는 항상 마음속 꿈으로 삼았던 ‘산티아고 가는 길’을 완주할 수 있었다. 6년 전 시작해 전체의 절반을 걸었던 그 길을 이번에는 완주를 위해 남겨둔 절반을 걸음으로써 다시 한번 지나온 삶을 뒤돌아보게 되었다. 멀리 걷는 행위에서 특별한 무언가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크고 작은 욕심들을 내려놓고 싶었다. 그리고 서해의 섬, 연평도에서 시작된 순례의 ‘초심’인 조국의 평화통일을 기도하면서 ‘원견명찰(遠見明察)’의 화두를 다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하루에 30㎞를 걷다 보면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아침 6시 출발시점의 신선한 바람은 새로운 길에 대한 의욕과 기대를 갖게 하고, 햇살과 함께하는 오전의 시간들은 명상과 아득함이 교차되는 느낌이다. 점심 식사 후의 시간이야말로 순례의 정수를 느끼게 해 준다. 이미 20km를 넘게 걸어 지칠 대로 지친 몸에 작열하는 여름 태양이 내리쬐면 “나는 누구이며, 왜 여기에 있는가?”라는 회의가 들고, 거대한 자연 앞에서 너무나 미약한 자신의 모습에 한없이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된다. 그리고 묵주 기도에 기대 그 어려움을 넘으면 명징하게 맑아진 시간들과 마주하게 된다. 매일같이 이러한 감정의 등락을 겪으며 멀리 보고 밝게 살피고자 했다.
400㎞의 대장정을 마치며 깨달은 것 중의 하나가 우리의 삶은 어느 순간의 단편적인 모습이 아니고 “이어가는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조기와 꽃게로 삶의 터전을 삼고 있었던 연평도는 한국전쟁의 아픈 역사에 이어 북한의 포격 사건으로 상처가 덧난 외로운 섬이다.
북한의 포격이 있던 그날의 두려움과 안타까움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러나 해병대 군인으로 연평도에 근무하며 포격의 현장을 견뎌냈던 아들은 지금도 그때의 경험이 자신의 삶을 좀 더 강하게 만든 힘 중의 하나가 되고 있다고 얘기한다. 우리 부부의 조국의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순례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되었다. 과거를 반성하고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야말로 바로 과거로부터 “이어가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적인 삶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류 문명의 ‘원형질’, ‘본질’ 혹은 ‘핵심’은 무엇일까? 우리 한민족에게는 5000년 역사를 뛰어넘어 변하지 않는 무엇인가가 과연 있기는 한 것일까? 아니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본래 가지고 있던 문명과 새로운 문명이 결합돼 그 원형질이 끊임없이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개인적으로 이러한 문명의 패치워크를 믿는다. 인도에서 발원한 불교문화가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들어와 크게 꽃피운 것이 그러하고, 수많은 순교자의 희생을 자양분으로 한국의 가톨릭이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활발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증명이라고 할 수 있다.
‘산티아고 가는 길’에도 2000년 전 순교한 야고보 성인을 기억하면서 세계 각국의 순례자들이 모여들고 있다. 나는 이것을 “이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류 역사는 상대방을 부정하고 이겨내서가 아니라, 서로 다른 것들에 대한 관용과 이해를 통해 발전을 이루어 왔음을 보여준다. ‘70년 분단’이라는 현실 앞에 서 있는 우리 민족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