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계 의원 “대법원이 키코사기 핵심 증거 묵살…졸속판결”

입력 2017-10-12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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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키코(KIKO) 판결의 내용을 뒤집을 수 있는 핵심 증거의 존재를 알고도 이를 묵살한 정황이 포착됐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대법원이 키코 계약에서 은행의 사기를 입증할 수사보고서가 곧 제출될 수 있는 상황임을 인지하고도 서둘러 최종 판결을 내렸다고 지적했다.

2013년 9월 키코 사건 최종판결이 있기 두 달 전인 7월 18일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공개변론(변론종결)에서 키코 관련 검찰 수사보고서의 존재 사실을 인지했다. 당시 피해기업(원고) 쪽 대리인이었던 김성묵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는 은행이 ‘막대한’ 수수료를 챙긴 검찰 수사 증거가 있고 정보공개청구 관련 소송 중임을 밝혔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를 반영하지 않고 판결을 진행했다.

키코는 환율이 일정 범위 안에서 변동할 때 미리 약정한 환율에 약정금액을 팔 수 있도록 한 파생금융상품이다. 은행은 키코가 풋옵션(팔 때)과 콜옵션(살 때) 가치가 같아(합산 시 ‘0’) 기업이 은행에 수수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제로 코스트’ 상품으로 소개했다.

특히 우량고객에게만 기존 선물환 계약보다 ‘유리한’ 조건의 키코를 판매한다는 식으로 홍보하면서 상당수 중·소 수출기업들을 끌어들였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환율이 약정 수준 이상으로 급등하면서 기업들은 막대한 환차손을 입었다.

이에 2012년부터 진행된 민사재판에서 키코 수수료와 그로 인한 마이너스 시장가치에 대한 은행의 사전 설명의무가 쟁점이 됐다. 그러나 대법원은 “수수료가 시장 관행에 비해 현저하게 높지 않기 때문에 그로 인해 발생하는 마이너스 시장가치에 대해서까지 설명할 의무가 없다”며 만장일치로 은행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김 변호사가 공개변론에서 대법원에 반영을 요청한 중요 증거는 2012년 서울중앙지검이 키코 사기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은행 딜러들의 통화내용을 입수해 작성한 수사보고서다. 키코는 달러당 4원, 선물환은 달러당 10전의 마진으로 키코가 선물환의 40배에 달하는 수수료를 은행에 안겨준다는 내용이 담겼다. 당시 수사검사는 “은행이 선물환으로 인한 마진보다 키코가 훨씬 이익이 많이 남는다고 판단하고 전략적으로 키코를 판매한 흔적이 엿보인다”는 평가도 기술했다.

같은 해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이러한 수사기록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원고 측은 서울중앙지검을 상대로 정보공개청구를 했으나 거절당했다. 이에 행정법원에 정보공개거부취소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승소한 후 중앙지검의 항소로 서울고등법원에 계류돼 있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점을 반영하지 않고 은행 측 손을 든 최종판결을 내렸다. 수사기록은 이로부터 6개월 후인 2014년 3월에서야 공개됐다.

박범계 의원은 “은행들은 키코카 ‘제로 코스트’라며 판매했는데 만일 기업들이 실제로는 이 거래가 은행의 마진이 많다는 점을 미리 알았다면 굳이 기존 선물환 거래에서 키코로 갈아타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선물환거래의 40배에 달하는 은행 마진을 기업들에 설명하지 않은 것은 사실상 기업을 속여서 키코를 팔았다는 것이다.

박 의원은 “2012년 당시 키코 수사가 윗선의 지시로 무마된 정황에 대해 질의했는데 이후 수사기록이 민사재판 증거로도 쓰이지 못한 것”이라며 “검찰과 법원, 거대 은행과 로펌이 합작해 진실을 호도하고 중소기업에 폭력을 행사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대법원 판결 전 1심까지는 208개 중소기업 중 165곳이 패소했고, 43개 기업이 승소한 바 있다. 당시 승소 사건에서는 은행에 20~50% 수준의 책임을 인정했다. 2012년 8월에는 은행 책임을 70%까지 본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대법원에서는 소수의견조차 없는 만장일치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려 논란이 됐다.

김소영 법원행정처장은 이날 오후 국감장에서 박범계 의원의 질의에 대해 “대법원 판결 당시 키코 사건 수사보고서가 공개되지 않았던 것에는 아쉬움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한편 대법원 판결의 부실성이 대두될 경우 키코 재조사에 대한 금융당국의 부담감은 낮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금융위원회의 민간 자문기구인 금융행정혁신위원회는 전날 1차 권고안 발표에서 키코 재조사 여부에 대해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윤석헌 금융행정혁신위원장은 “일단 사법부에서 결론을 낸 사안이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점이 있다”며 “우선은 그간 금융감독원 쪽에서 키코와 관련해 어떤 식의 대응을 했는지 들여다보고 권고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붕구 키코 공동대책위원장은 “금감원 내부의 ‘재탕’ 재조사가 아닌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민관 합동 조사단을 구성해야 한다”며 “검찰 재수사 역시 금융 및 민사판례 연구회 법조 적폐 사건까지 수사를 확대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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