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발효와 부패는 모두 미생물의 생명 활동인데 결과는 판이하다. 발효는 맛과 향이 좋고 사람에게 유익한 것을 만들어 낸다. 부패는 맛과 냄새가 고약하고 건강을 해치는 것을 만들어 낸다. 우리 술을 빚다 보면 가끔 잘못되는 경우가 있다. 너무 시어버리는 산패(酸敗)와, 달기만 하고 알코올 발효가 진행되지 않는 감패(甘敗)가 대표적이다. 원인은 잘못 띄운 누룩, 온도 관리 실패, 잡균 오염 등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산패와 감패가 생겼을 때 무엇이 직접 원인인지 알기는 매우 어렵고, 완벽하게 방지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고 같은 쌀 누룩 물을 갖고, 두 사람이 같은 장소에서 동시에 술을 빚어도 맛과 향은 많이 다르다. 한 사람이 같은 재료로 빚은 술을 통만 다르게 하여 발효시켜도 맛과 향이 다른 술이 된다. 이것은 생명 활동의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일란성 쌍둥이도 여러 면에서 다른 사람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발효라는 생명 활동을 거쳐 나온 술의 맛과 향이 항상 일정하다는 것은 비정상이다.
발효 과정이 상대적으로 단순한 와인도 같은 양조장, 같은 양조 연도라도 발효 통에 따라 맛이 조금 다르다. 증류주인 위스키도 숙성되는 통에 따라 맛이 조금씩 다르다. 맛의 일관성을 위해 전문가의 블렌딩이 필요한 이유이다.
공장 맥주의 경우 맛이 비교적 균질한 것은 제조 과정에서 온도 등의 통제가 정확히 이루어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알코올 도수가 낮고 탄산감이 강한 데다 강한 호프 맛이 맥주 맛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많이 팔리는 막걸리와 소주는 브랜드에 따라 맛이 똑같다. 생명 활동인 발효 과정에서 맛이 결정되지 않고, 인공 첨가물을 넣어 맛을 관리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 술을 빚다 보면 생명 활동의 신비함 또한 알게 된다. 효모는 생명체이고, 알코올은 살균력이 있다. 알코올 발효가 진행되어 알코올 도수가 올라가면 효모는 살아남기 어렵다. 와인 등 서양 발효주의 경우 알코올 도수가 12도가 넘으면 효모의 활동이 어려워지고 15도 정도에 이르면 효모가 사멸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우리 술은 20도 정도까지도 발효가 계속 진행된다. 좋은 우리 술은 이양주, 삼양주, 오양주 등과 같이 여러 번의 담금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효모가 알코올 내성을 갖게 되어 높은 도수의 발효주가 가능한 것이다.
술을 빚는 것은 신비한 생명 활동을 지켜보고 결과를 기다리는 일이다. 한 번에 빚는 단양주는 일주일 정도면 완성되지만 삼양주, 오양주 등은 세 달 정도 기다려야 한다. 여기에 맛을 좋게 하는 숙성 과정도 필요하다. 술을 빚어 마시는 일은 자신이 먹을 농작물을 직접 키워 먹는 것과 같다. 살아 있는 생명을 직접 돌보고 기다리며 술과 음식을 즐기는 것도 인생에서 꼭 해볼 만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