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국민에게 재판청구권을 부여한 것만으로 모든 국민이 제대로 사법적 구제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각종 재판 중 민사재판을 들어 설명한다. 민사재판은 당사자주의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사법적 구제를 제대로 받으려면 기초 사실을 정확하게 진술하고 이를 뒷받침할 증거를 충분히 제출하며, 나아가 법적 의견을 요령 있게 펼쳐야 한다. 그래야 법률에 의한 재판을 제대로 받아 사법적 구제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당사자는 판단 자료를 충실하게 제공할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판단 자료를 충실하게 제공하도록 하는 데에 법률 전문가인 변호사의 조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국민의 기본권인 재판청구권의 실질적 보장을 위해 변호사 강제주의 도입이 필수적인 것이다. 우리와 유사한 법체계를 가지고 있는 독일, 프랑스 등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 강제주의를 도입하고 있다.
민사소송 이외의 몇 가지 소송에서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현재 우리 법제에 이미 도입돼 있다. 헌법재판소법에는 헌법소원을 제기할 때 변호사 강제주의가 도입돼 있다. 그리고 변호사를 선임할 자력이 없는 당사자를 위해 국선 대리인제도도 갖추고 있다. 형사재판에서도 형사피의자, 피고인이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길은 헌법에 의해 보장돼 있다. 그리고 형사사건을 다루는 기관은 반드시 이들에게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알려줘야 한다. 현재 국선변호사제도가 잘 갖추어져 있어 형사피의자, 피고인은 거의 모두 변호사의 조력을 받고 있다. 민사, 행정재판 등에서도 이처럼 모든 당사자에게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수 있게 하자는 것이 지금 필자가 주장하는 변호사 강제주의이다.
1990년 정부가 민사재판 중 상급심 재판에 변호사 강제주의를 도입하려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입법에는 이르지 못했다. 1995년 법원도 같은 취지의 개정안을 마련했지만, 역시 입법에는 이르지 못했다. “당사자에게 부담을 지운다”, “당사자주의를 제한한다”, “감당할 변호사 수가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로 뒤로 미뤄졌다. 소송구조, 국선 대리인제도는 기본권 보장과 아울러 사법 복지 측면에서도 반드시 갖추어야 할 제도다. 변호사 수는 곧 3만 명에 이를 것이므로 그 수의 부족 역시 뒤로 미룰 사유가 되지 않는다.
이 강제주의의 도입 논의는 2014년 5월 대법원장 자문기구인 사법정책자문위원회가 다양화된 분쟁 해결과 변호사 공급 과잉 현상에 대한 해결점을 찾는다는 등의 이유로 대법원장에게 건의한 뒤 이어졌다. 이어 2017년 6월 나경원 의원이 우선 상고심에 이 제도를 도입하자는 민사소송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해 그 개정안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상고심에서는 법령 위반의 점을 제시하기 위해 법률 전문가인 변호사의 조력이 필수적이라고 나 의원은 강조했다. 또 변호사를 선임할 자력이 없는 당사자를 위해 민사국선 대리인제도 도입도 포함돼 있다. 국선 대리인 선임을 위해 국가가 부담할 비용은 위 개정안에 첨부된 자료에 의하면 연간 10억 원 정도에 불과하다. 비용이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한마디 첨언한다. 강제주의를 도입해 시행함에 있어서 국선 대리인의 선임권을 어디에 맡겨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헌법소원, 형사재판에서 현재 하고 있듯이 법원이 직접 선임하도록 법원에 맡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대법원은 변협에, 각급 법원은 대응하는 지방변호사회에 선임권을 넘겨야 한다. 법원이 어느 한쪽 대리인을 직접 선임하는 것은 중립을 지켜야 할 법원이 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