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중개지원대출제도를 개편해 신성장동력 발굴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중소기업, 업황이 부진한 지방중소기업 등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경기대응적 기능을 강화해 통화신용정책의 효율성을 제고하겠다.”
10일 한국은행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금융중개지원대출제도를 개편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이 같은 금융중개지원대출제도는 9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그간 정치권과 정부, 일부 전문가 등에서는 한은이 기존 한은의 목표인 물가안정이나 금융안정 이외에도 성장이나 고용안정에 대해 신경 써줄 것을 요구해왔다. 박승 전 한은 총재가 6월 12일 한은 창립 제67주년 기념 축하모임 축사에서 “한은도 중앙은행으로서 정통적인 물가안정은 물론 국제수지, 고용, 성장 등 민간 목표를 포괄하는 정책목표를 갖고 앞장서 주길 바란다”고 언급한 게 대표적인 예다. 한은도 이 같은 요구와 변화된 시대상을 반영해 지난해 말 올해 연간 통화정책방향에서 성장세 회복과 고용 등 성장 잠재력 확충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금융중개지원대출제도를 개편하겠다고 밝힌 바 있었다.
그렇다면 한은이 이 같은 기업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한은이 돈만 찍어내는 곳으로 알았던 이들이나 혹은 기준금리만 결정하는 곳으로 알았던 일반인들로서는 그저 의아할 뿐이다. 아울러 금융중개지원대출제도라는 용어 자체마저 생소할 뿐이다.
◇금융중개지원대출 옛 이름은 총액한도대출, 한때 폐지 검토 = 금융중개지원대출제도는 1994년 3월 정책금융을 축소·정비하고 유동성 조절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기존 자동재할인방식의 대출제도를 개편해 첫 도입됐다. 도입 당시에는 총액한도대출제도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 제도는 공개시장운영, 지급준비제도, 여수신제도 등 한은이 갖고 있는 통화정책수단 중 하나이며, 여수신제도 중 한 부문에 속한다. 한은 금통위가 정하는 일정 한도 내에서 금융기관의 중소기업 대출실적 등을 감안해 자금을 낮은 이자로 지원하는 것이다. 은행이 한은으로부터 차입할 수 있는 총액한도(aggregate ceiling)를 미리 정하고 일정 기준에 따라 은행별 한도를 배정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면서 총액한도라는 명칭이 붙었었다.
이후 2013년 12월 26일 금통위에서 총액한도대출제도 개선책을 내놓으면서 이름이 현재와 같은 금융중개지원대출로 바뀌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은의 신용정책 기능을 재정립하고 총액한도대출제도의 성격 변화 등을 고려한 것이다.
실제 총액한도대출이라는 명칭은 과거 통화량목표제 아래에서 통화량 관리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하겠다는 성격이 강조된 것이다. 이에 따라 통화정책이 금리중심 운용체계로 변경된 후부터는 이 같은 취지가 약화됐었다.
결국 제도 도입 당시 8조8000억 원이었던 한도는 1997년 2월 지급준비율 인하와 함께 3조6000억 원까지 대폭 축소되기도 했었다. 또 이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부 금통위원 사이에서도 있었다. 이 제도가 도입 당시 과거 정책금융 제도에서 순수 유동성 조절 목적의 대출제도로 가는 과도기적 형태로 인식된 것도 한때 존폐 기로에 선 이유이기도 했다.
결국 2013년 말 개선책으로 금융중개지원대출은 새로운 전기를 맞는 셈이 됐다. 제도적 측면에서도 명칭 변경과 함께 금융기관별(기술형창업지원, 무역금융지원, 신용대출지원, 영세자영업자대출지원)과 지역본부별로 구분했던 한도를 폐지하고, 5개 프로그램(기술형창업지원, 무역금융지원, 신용대출지원, 영세자영업자지원, 지방중소기업지원)으로 재구분했다.
이 같은 프로그램 명칭은 이후 기술형창업지원이 창업지원으로 범위를 확장해 운영돼 오다가 올 9월부터 신성장일자리지원, 무역금융지원, 영세자영업자지원, 중소기업대출안정화지원, 지방중소기업지원 등으로 변경될 예정이다. 또 2013년 말 개선책을 내놓은 직후인 2014년부터는 분기별로 조정하던 한도를 필요시 수시로 조정하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프로그램별 연 0.5~0.75% 금리 대출, 실적 사상 최대 행진 = 금융중개지원대출은 한은이 사전에 지원대상의 대출 요건을 정하고 은행은 개별 기업을 심사해 대출 실행 여부 및 대출 조건을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즉 은행이 자체 자금으로 지원대상 대출을 취급하면 한은이 동 취급 실적에 따라 사후에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통상 실제 금융중개지원대출 자금이 시중에 풀리기까지는 대출이 이뤄진 후 2개월 정도가 소요된다.
시중은행은 조달금리를 낮출 수 있는 메리트가 있고, 대출 기업들도 기존 대출금리보다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대출 금리는 프로그램별로 연 0.5%에서 0.75%가 적용되고 있는 중이다.
9월부터 새롭게 개편한 프로그램의 금리 수준은 이달 말까지 시행안을 마련해 확정할 예정이다. 현행 창업지원과 영세자영업자지원, 무역금융지원은 각각 연 0.5%, 설비투자지원과 지방중소기업지원은 각각 연 0.75%를 적용하고 있다.
7월 말 현재 대출 실적은 17조3839억 원으로 1994년 3월 한은이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이래 역대 최대치를 경신 중이다. 대출한도(25조 원) 대비 실적 비율은 69.5% 수준을 보이고 있다.
2012년 10월 기존 7500억 원에서 9000억 원으로 한도가 증액된 이후 총 다섯 차례의 증액이 있었다. 이후 네 차례 증액 시 한도 대비 실적 비율 평균은 80.0%였다. 마지막 증액이 있었던 지난해 3월 직전월의 한도 대비 실적치는 77.4%였다.
한은은 이번 제도 개편으로 지원비율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중이다. 이에 따라 대출 실적은 실제 관련 실적이 잡히는 올 11월경부터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한때 폐지를 검토했던 금융중개지원대출제도가 이렇게까지 변화한 것을 보면 실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자본금융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