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유럽연합(EU) 대표들과 협상 끝에 6일(현지시간)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 성격의 경제연대협정(EPA)을 타결했다.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0%, 세계 교역의 40%를 차지하는 EPA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반기지 않을 것이라고 CNN머니는 진단했다.
이날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을 염두에 둔 듯 “자유무역이 여전히 건재하며 잘 작동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CNN머니에 따르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보호무역 기조가 암운을 드리우는 속에서 일본과 EU는 자유무역의 기수로서 강한 의지를 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를 선언했고 중국, 멕시코 등과 무역 담장을 높일 것을 공언했다.
‘미국 우선주의’를 천명하며 보호무역의 기치를 높이는 트럼프가 EPA를 달가워하지 않은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미국 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EU는 일본 자동차에 부과하던 10%의 수입 관세를 7년에 걸쳐 철폐한다. 반대로 일본은 EU 국가와 자동차 생산 공정을 협력키로 했다. 폴크스바겐이나 BMW 같은 유럽의 자동차 제조업체가 일본에서 차량을 판매하기 더 쉬워진다는 것을 뜻한다. 2011년 EU가 한국이 FTA를 체결하고 나서 EU의 대(對) 한국 자동차 수출은 4년 만에 3배로 늘어났다고 CNN머니는 전했다. 이는 EU 국가에 수출 할 때 10%의 관세를 무는 미국 자동차 제조업체를 압박할 수 있다.
두 번째 이유는 파리기후변화협약(이하 파리협약)을 지킨다는 문구가 EPA 협정문에 포함된 탓이다. 트럼프는 지난달 미국이 파리협약에서 탈퇴한다고 공식 선언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들은 미국의 탈퇴와 상관없이 파리협약을 지키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이런 가운데 EPA는 2016년 파리협약이 발표되고 나서 이후 이를 이행하겠다는 약속을 포함한 최초의 무역 협정이다. EPA가 선례가 되면 미국이 다른 나라와 무역협정을 맺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 캐나다 싱크탱크 국제거버넌스혁신센터의 셀린 백 수석 연구원은 “앞으로 다른 무역협정에도 파리협약 내용이 포함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미국이 파리협약 탈퇴 의사를 계속 밀어붙이면 잠재적 교역 상대국들이 미국을 외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세 번째는 EPA가 다자간 무역협정의 모양새를 띠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기본적으로 보호무역을 천명하지만, 자유무역 중에서도 다자간 무역을 싫어한다. TPP 탈퇴를 선언한 것도 이 때문이다. 트럼프는 미국이 맺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 도 재협상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제프리 게르츠 연구원은 “트럼프는 세계 경제를 제로섬(zero sum) 게임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양자 간 협상을 더 선호한다”고 분석했다.
미국 싱크탱크 스팀슨센터의 네이트 올슨 무역 전문가는 “일본-EU 간 무역협정은 G20 정상회의에 앞서 미국의 지정학적 역할에 큰 도전을 한 것과 같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하듯 기자회견에서 이번 EPA가 앞으로 다자간 무역협정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밝혔다. 아베는 “나는 TPP 중요성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지속적으로 설명하려고 애썼으나 불행히도 미국은 현재 탈퇴 의사를 선언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