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금호산업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계열사와 자금거래를 할 때 공정거래법과 상법을 위반한 혐의가 제기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재벌 개혁'을 화두로 내세우고 있어 공정거래위원회의 금호그룹 사건 처리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공정위가 금호그룹 사건 조사에 나서면 향후 금호타이어 매각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개혁연대는 23일 ‘금호그룹의 계열사 간 자금거래 등의 적절성 검토’라는 경제개혁이슈 보고서를 통해 "금호산업 등이 금호홀딩스에 대해 일정금액 이상 자금을 대여하는 과정에서 공시의무를 회피하기 위해 편법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공정위의 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공정거래법상 재벌 소속 회사가 다른 계열사와 자본총액(또는 자본금 중 큰 금액)의 5% 또는 50억원 이상의 거래를 할 경우 이사회 의결 및 공시를 의무적으로 해야하는데, 에어부산을 제외한 나머지 6개사는 대여금이 자본총액의 12~39%에 달하는데도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금호 계열사들이 만약 자금거래를 자본총액의 5% 이하로 나누어 했더라도 공정거래법 위반에 해당한다. 박 회장은 2015년말 금호홀딩스를 설립해 금호산업을 인수한 뒤 2016년에 금호산업, 아시아나아이디티 등 7개 계열사로부터 966억원을 차입했다.
보고서는 금호홀딩스가 7개 계열사에 지급한 이자율이 2~3.7%로 낮은 것도 지적했다. 외부 금융회사로부터 빌린 돈의 이자율은 6.5~6.75%로, 계열사에서 차입한 자금의 이자율은 훨씬 낮아 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또 아시아펀드가 금호홀딩스에 출자하기 위한 자금확보용으로 2015~2016년에 발행한 100억원 어치의 회사채를 금호 계열사인 아시아나세이버가 모두 인수하고, 금호그룹 산하 2개 공익법인이 100% 지분을 보유한 케이에이 등 3개사가 금호홀딩스에 100억원을 출자한 것은 채권단이 박삼구 회장의 금호산업 인수 조건으로 제시한 ‘계열사 자금동원 금지’ 원칙을 어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금호홀딩스가 금호산업의 지분 46%를 보유하고 있는 주요주주인데도 이사회 승인을 얻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상법상 회사가 이사나 주요주주(지분율 10% 이상이거나 경영권을 행사하는 주주)와 ‘자기거래’를 할 때는 이사회의 3분의 2 이상 승인을 얻어야 한다.
특히 경제개혁연대는 KDB산업은행이 향후 금호산업 때와 같이 지분을 매각할 경우 "자금조달 능력 부분 판단에 유의할 것"이라고 권고했다.
앞서 금호그룹이 금호산업을 인수할 당시 산업은행이 '계열사 자금 동원 금지 원칙'을 제시했으나 금호기업이 금호산업을 인수한 이후 금호그룹 계열사들은 직간접적으로 금호기업 등과 직간접적인 자금거래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삼구 회장은 현재 그룹 재건을 위해 금호타이어 추가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자금조달 능력이 안 되어 '우선매수청구권'을 포기했지만 여전히 금호타이어 인수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혀 산업은행과 갈등을 겪고 있다. 때문에 금호산업 인수와 관련된 계열사 간 자금거래에서 위법사실이 드러나면 그룹 재건에도 어려움이 예상된다.
한편, 공정위는 문재인 정부의 총수일가 사익편취 근절 공약 일환으로 재벌의 내부거래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이고 있다. 금호그룹의 법위반 혐의가 확인되면 바로 정식조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최근 공정위는 경제개혁연대가 지난해 10월 삼성의 위장계열사로 의심된다고 신고한 삼우종합건축사무소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