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로이트안진이 존폐 기로에 서게 된 배경에는 대규모 고객 이탈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안진은 상장사와 금융회사에 대한 2017 회계연도 감사 업무정지 조치를 받았다. 증권선물위원회가 결정한 업무정지 범위 이외의 회사들도 안진에서 다른 회계법인으로 감사인을 교체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금융당국도 상장사가 감사인을 교체할 수 있도록 했다. 증선위의 결정은 딜로이트안진의 2017 회계연도 상장사ㆍ금융기관 감사 업무정지다. 이 때문에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등 올해 딜로이트안진과 감사 재계약을 맺은 곳은 모두 회계법인을 바꿔야 한다. 상장사는 3년 단위로 재계약을 맺는데 올해 딜로이트안진과의 재계약 대상 회사는 80여 곳이다.
상장사들도 희망하면 회계법인을 교체할 수 있다.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이하 외감법) 제4조의 2에 따르면 감사인이 직무상 의무를 위반하면 회사는 이들을 해임할 수 있다. 딜로이트안진 소속 회계사 등록 취소는 감사인 해임 사유에 해당한다고 증선위는 밝혔다. 사실상 딜로이트안진에서 감사를 받는 모든 상장사가 감사인을 교체할 수 있는 것이다.
회계업계에서는 의무적으로 딜로이트안진에서 다른 곳으로 감사인을 교체해야 하는 기업이 170여 곳(상장사ㆍ금융사ㆍ감사인 지정사)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여기에 딜로이트안진에서 감사를 받는 1~2년 차 상장사들 모두가 회계법인을 교체한다고 가정하면 해당 수치는 320여 곳으로 늘어난다. 이 회계법인이 감사하는 회사가 1100여 곳인 것을 고려하면 30%에 해당하는 수치다.
딜로이트안진의 2015 회계연도 기준 감사부문 매출은 1049억 원으로 전체 매출의 34.9%에 달한다. 최악의 경우 올해 감사부문 매출이 전년 대비 절반가량 감소할 수 있다. 더욱이 상장사의 감사 계약 기간이 3년인 것을 고려하면 현대차 등 딜로이트안진이 올해 잃은 고객들은 최소 2019년까지는 다시 확보할 수 없다. 또 대형 회계법인의 경우 감사와 컨설팅, 재무자문을 통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아 다른 사업부문의 피해도 예상된다. 주요 고객을 잃은 딜로이트안진은 장기적 관점에서도 매출 타격이 불가피한 셈이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기업은 감사인을 바꾸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면서도 “이번 금융당국 조치로 안진의 대외 신뢰도가 떨어진 것을 의식해 의무 교체 대상이 아닌 기업들도 감사인을 바꾸려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딜로이트안진이 사업 부문별로 쪼개질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당초 감사 부문 분사를 계획했던 이 회사는 해당 계획을 잠정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 상황에서 회사를 분할하는 것은 되레 해체를 가속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딜로이트안진 최고위 경영진의 이 같은 판단과 별개로 분사가 가속화할 수 있다. 기존 딜로이트안진 소속 회계사들이 모여 재무자문(어드바이저리)과 세무, 감사부문 회사를 별도로 설립할 수 있다. 이 경우 이들이 세계 1위 회계 컨설팅 그룹 딜로이트와의 별도 제휴를 추진할 것으로 관측된다.
안진회계법인 측은 딜로이트와의 제휴 관계가 유지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와 관련 앨런 글렌 딜로이트 아시아ㆍ태평양 감사 및 품질관리 책임 파트너는 27일 안진회계법인 본사가 있는 서울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를 방문한다. 이 자리에서 그는 딜로이트와 안진의 제휴 관계 유지를 강조할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장기적 시각에서 둘 간의 제휴 관계에 대한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는 업계 관계자는 많지 않다. 딜로이트 측은 이미 현 안진과는 일부 부문만 제휴를 유지하고 한국 시장에서 새 파트너를 찾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또 딜로이트가 안진의 재무자문 부문을 독립시켜 새로 제휴를 맺는다면 이 역시 기존 관계의 균열이란 평가도 나온다.
대형 회계법인 관계자는 “영업정지 전례가 있는 곳은 회계업계에서 살아남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글로벌 컨설팅업체 KPMG도 산동회계법인이 대우 사태에 연루돼 영업정지를 받자 삼정으로 제휴사를 교체했다.